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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칩일은 지금의 발렌타인데이연인끼리 사랑을 약속하며 은행을 교환

오늘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경칩(驚蟄)으로 입춘과 우수에 이어 봄을 알리는 절기이기도 하다.

원래 『한서(漢書)』에는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후에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避諱)하여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왕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민간의 풍습으로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또는 도롱뇽) 알을 건져다 먹기도 하였다.

또한 고로쇠나무(단풍나무, 어름넝쿨)를 베어 그 수액(水液)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경칩이 ‘발렌타인데이’와 비슷한 ‘연인의 날’이였다고 하는데 가을에 은행을 주워 보관하고 있다가, 서로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 위해 경칩날 교환했다고 한다.

캘리그라피 & 디자인 by 이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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