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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한가위’라는 화두

  올해 추석은 열흘동안 유난히 길었다. 귀향길이 넉넉했고 돌아오는 귀경길도 여유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았다.
 
 시절이 변하다보니 추석도 옛날만큼 정겹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추석만 같아라.’는 말은 아직 유효한 셈이다.
 
 추석은 가을저녁이란 뜻이다. 한가위의 멋은 보름달에 있다는 은유다. 올해도 세화연풍(歲和年豐)이니 보름달은 선녀 항아의 미색이다. 차례를 지내고 조상을 찾는 일은 의식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원형질이다.
 
 일제 치하 강원도 산골 화전민들이 살던 오지에 폭설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참변을 당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게 된다.
 
 어느 외딴집 네댓 명의 가족이 고스란히 아사했는데 그 집 천장에 매달린 봉지에는 젯메쌀이 두어 되 가량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 제사에 쓸 쌀을 먹을 수 없어 굶어죽은 것이다.
 
 그 산골 화전민들이 유식한 유학을 배웠을 리도 없고 보면 우리들의 극진한 효사상은 유교문화 이전에도 있었던 고유관습이었다.
 
 배우지 못한 천민이 아버지 제사를 지내면서 생시에 무척 좋아 하신 개고기를 장만하여 제사상 밑에 놓고 절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온 가족이 계속 절을 하는 이상한 제사를 본 양반이 까닭을 묻자 ‘양반이야 유식해서 귀신이 언제 왔다 가는지 알지만 우리네 같은 까막눈이야 알 수가 없어서 밤새도록 절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번은 우리 아버지가 절을 받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효는 다반사에 속하는 원형적인 특질이었다. 과거에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까지도 현재와 통합하려는 기질이 강하며 시간을 구별하여 쪼개지 않고 둥근 원 속의 한 점으로 봉합하려했다.

 패륜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성에 의인이 구출될 때 신은 그들에게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주문을 한다. 희랍신화에서도 오르페우스는 명부에서 아내를 구출할 때도 같은 주문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어기며 소금기둥이 되거나 검은 돌이 되었다.

 서구인들이 집착하는 현세적인 미덕관이며 우리와 다른 세계관이다. 말하자면 서구인들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주문이다. 그들은 과거는 캄캄한 어둠 저편의 일이요 거기에 연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생산적이지도 못하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다.
 
 서구인들은 죽음을 ‘Pass by’로 이미 흘러가버린 사람이고 단절된 시간으로 본다. 한국인들이 죽음을 ‘돌아가셨다’로 보는 시각과 많은 차이가 있다. 시간관념을 직선적 사고로 보는 서구인에 반해 동양인들은 원형적인 감각으로 돌고 도는 윤회의 바퀴로 보았던 것이다.
 
 ‘1년에 한 번 이묘지가 꽃밭이 되는 날/죽음을 감추고 부풀어 오른 여인의 유방처럼/술과 하늘과 눈물에 취해서/ 한껏 어지러운 슬픈 사랑’으로 시인은 한가위를 노래했다. 감성적인 민족원형을 흔들고 있다.

 한가위에 민족대이동을 하는 이유이다. 1년에 단 한번 묘지가 꽃밭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벌초를 하고 조상의 무덤을 찾는 일은 천년을 이어온 미풍양속이었다. 화전민의 아사에서 보는 눈물겨운 감동이나 과거까지도 현재와 통합하려는 원초적인 생명력이기도 하다.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라진 제사를 유독 우리만이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화두’로 삼을 만하다. 오천년을 이어온 민족원형질인 삶도 죽음도 ‘하나’로 보는 고유문화 때문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의 세계경쟁력은 우리 것을 찾는 일이다. 이제 한가위에 묻혀있는 DNA를 찾을 때가 되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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