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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징비의 삶, 임진왜란을 이기다 

저자 수암 류진| 번역 류영하| 출판 박영사| 발행 2023.03.15.

본서는 『서애전서(西厓全書)』(1991년간) 제3권에 수록된 “연보(年譜)”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편역하였다. 간본연보에 정조(正祖) 이후의 기록이 추가로 등재되어 있어 함께 편역, 수록하였다. 다만 일부 친속(親屬)에 관계된 기록은 최근의 세보(世譜: 2007년 간(刊)) 등에 수록된 기록을 참고하여 수정 증손(增損)하였다. 번역문은 일반인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쉽도록 쉬운 현대어로 하였으며, 원문의 뜻에 충실히 하고자 하였다.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를 편역하며

이 책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연보(年譜)를 편역한 것이다. 연보란 어떤 인물의 출생부터 사망 때까지의 행적을 연도별로 기록한 것을 말한다. 기전체(紀傳體)가 아닌 편년체(編年體)의 개인 역사서인 셈이다. 서애선생(이하 서애로 부른다) 연보에는 초고본(草稿本) 연보와 간본(刊本) 연보가 있다. 1970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는 서애 종가(충효당)에 보존되어 오던 『초고본서애선생연보(草稿本西厓先生年譜)』 상하(上下) 2권(二卷)을 영인(影印)하여 간행한 바 있었다.

그 서문(序文)에 “서애 종가(宗家)에는 4종(四種)의 초고본(草稿本) 연보가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修巖 柳袗) 이 초안한 연보초기(年譜草記)(4책)이고, 또 하나는 간행 연보와 체재(體裁)가 동일하나 그 내용이 훨씬 상세한, 즉 간행본(刊行本)의 기본이 된 것이라 추측되는 초고본이며, 기타 2종(二種)이 있으나, 이는 아마도 행장(行狀)을 찬술(撰述)한 정경세(鄭經世) 선생과 이준(李埈) 선생이 수암공과 더불어 연보 자료로 작성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이 4종 가운데 수암공의 연보초기가 내용에 있어서 가장 상세하고 또 사료적 가치도 풍부하지만 애석하게도 묵선(墨線)으로 삭제한 부분이 많아 판독하기 곤란하여 영인(影印)에 붙이지 못하였다. 이제 영인에 붙이는 서애선생 연보(2책)는 간행본 연보의 기본이 된 초고본으로서 체제와 내용에 있어서 간행본과 거의 같으나 내용에 있어서 훨씬 상세하고 충실하다”라고 했다.

서애전서(西厓全書) 권일(卷一) 간본편(刊本篇)에 수록되어 있는 연보는 초고본을 뒷날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선생의 교정(校正)을 받아 간행한 간본 연보이고, 서애전서 권3(卷三) 부록편(附錄篇)에 수록된 연보가 간행본의 기본이 되었던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이다.

본 편역서는 이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를 처음 편역한 것이다. 즉 간본연보를 교정할 때 하는 불필요한 글자나 글귀를 지우는 산삭(刪削)이 되기 전의 사실이 실려 있다. 간본연보는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초출(抄出) 편역한 바 있으나, 초고본과 비교해보면 많이 간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야 말로 가장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일부 친속(親屬)에 관계된 원문 기록은 그 당시와 지금의 사회적 체제 변동이 있음에 따라 최근 풍산류씨 세보(世譜: 2007년)의 기록을 참고하여 수정 증손(增損)하였다.

팔순의 나이를 넘긴 본 역자가 한학을 익혀 류성룡 선생의 연보(年譜)를 편역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가 불의에 왜적에게 침략당하여 20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두 달 만에 평양성이 함락되어 나라의 운명이 명재경각에 이르렀다. 이런 전시 상황에서 전시총사령관 겸 전시 재상으로서 전세를 역전시켜 7년간의 전쟁을 이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애 류성룡이 어떤 사람인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순신이 바다에서의 싸움에서 32전 32승을 거두어 완벽하게 왜군을 이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육지에서의 전쟁, 자기 집의 사유노비를 전쟁에 징집하기를 거부하는 이기적 사대부들과의 전쟁, 그리고 원군을 보낸 것을 매개로 조선의 직접통치를 노리는 중국과의 외교전쟁을 이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애 류성룡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 서애가 조선 국가와 백성들에게 정치, 외교, 국방, 민생, 학문, 문학 등 다방면에 끼친 공훈은 아직 다 밝혀져 있지 못하다. 그의 진면목에 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며, 사계(斯界)의 연구가 가일층 희구(希求)되는 바이다.

본 연보를 편역하면서 본문에 나오는 인물과 주요 사항에 대해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900여 개의 각주를 달았다. 본 연보의 편역과 각주가 서애 연구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역자에게는 더 이상의 기쁨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서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에 참여하는 학자도 점증하는 추세에 있다. 서애학회가 창립되어 본격적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또 지난해 2022년은 서애 탄생 480주기(8주갑)가 되는 해이기도 한데, 이때 초고본이 번역되어 출판하게 된 것은 서애 류성룡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격려해주고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한학을 좀 익혔으나 부족한 점이 많은데, 책 출판 과정에서 격려와 지도 편달을 아끼지 않으신 서애학회 송복 회장님과 서애학회 회원 여러분께 이 지면을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이 책을 출간하면서 옛날 책을 현대적 감각의 책으로 거듭나도록 편집하는 데 여러모로 도와주신 서애학회 서재진 부회장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풍산 류씨 문중에서도 두 차례나 원고를 정독하며 교열에 노구(老軀)의 몸을 아끼지 않은 동주(東柱)님께도 많은 빚을 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원문 강독을 함께 한 온지회 회원 여러분과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대하(大夏), 종하(宗夏), 덕하(德夏), 을하(乙夏) 제공과 창해(昌海), 한익(漢翊)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뜻을 올리는 바이다. 방대한 번역을 마치고 보니 잘못된 곳이 있지나 않을까 두렵기 짝이 없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質正)을 바라마지 않는다.

2023년 3월 류영하(柳寧夏)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珍·1582~1635)을 불천위로 모시는 상주시 ‘수암 종택(修巖 宗宅)’

저자 :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자(字) 계화(季華), 호(號) 수암(修巖)
서애 선생 제3자
진사시(進士試) 장원(壯元)
봉화, 청도, 예천, 합천 군수
통훈대부 사헌부 지평
병산서원에 종향(從享)
1618년 하회(河回)에서 상주(尙州) 우천(愚川)의 가사리(佳士里)로 이거(移居)
저서: 수암선생문집, 사례집략(四禮輯略), 『초고본서애선생연보(草稿本西厓先生年譜)』

편역자: 류영하 (1943~  )
경북 안동 출신, 본관 풍산. 경북고등학교,
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전번역원 부설 국역연수원 5년 수학.
중소기업은행 이사 및 기은 캐피탈 감사 역임
풍산 류씨 대종회 수석부회장 역임
(현) 서애학회 고문

번역서
학천선생(鶴川先生) 유집(遺集) 2012
백암실기(栢巖實紀) 2013
성담유고집(醒潭遺稿集) 2013
종천영모록(終天永慕錄) 2015

저서
서애 류성룡 선생 소전(小傳) 2014
존요록(尊堯錄)으로 보는 영남(嶺南) 남인(南人)의 예설(禮說) 연구, 석사학위 논문, 2021


목차 

제1부 성장기
01 출생과 소년시절, 1~12세 3
02 맹자를 읽고 선비의 길을 걷다, 13~16세 7
03 종실(宗室)과 혼인하다. 조부상(祖父喪)을 당하다, 17~19세 10
04 퇴계 선생 문하로 들어가다, 20~21세 13
05 생원 진사 시험에 들다. 보우를 탄핵하다, 22~24세 16

제2부 입신에서 당상관까지
06 과거(문과) 합격. 벼슬길에 들어서다, 25세 23
07 정9품으로 승진하다, 26세 25
08 정8품으로 승진하다, 27세 26
09 인묘를 연은전에 부(祔)하는 비례(非禮)를 논박하다, 28세 28
10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 수도에 다녀오다, 28세 31
11 경연(經筵)에 참석하다, 29세 38
12 서애(西厓)에 서당으로 쓸 집터를 잡다, 30세 43
13 동고유차(東皐遺箚), 이준경(李浚慶)의 삭탈관작을 반대하다, 31세 45
14 부친상(父親喪), 시묘살이, 32~34세 49
15 다시 조정으로 돌아오다. 어머니 봉양을 위해 사직을 청하다, 35세 52
16 휴가를 얻어 안동으로 근친하였다, 36세 56
17 인성왕후 승하 때 복제(服制)를 간쟁(諫爭)하다, 36세 58
18 사간원 사간(종3품)에 임명되다, 37세 60
19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하다, 38세 63
20 상주(尙州) 목사(牧使)로 부임하다, 39세 66
21 홍문관 부제학, 무빙차(無氷箚)를 올리다, 40세 72
22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다, 41세 84
23 북변오책(北邊五策)을 올리다, 42세 86
24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42세 105
25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되다, 43세 110

제3부 재상의 길
26 예조판서에 오르다, 43세 117
27 정여립 사건에 대하여 상소하다, 44세 131
28 향리로 돌아오다, 옥연 서당이 낙성되다, 45세 136
29 사직하고 향리에 돌아오다, 46세 141
30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이 되다, 47세 143
31 축옥사(己丑獄事)가 일어나자 사직 상소를 올리다, 48세 151
32 종계변무의 공로로 풍원부원군에 봉해지다, 49세 165
33 이조판서를 겸임하고, 좌의정에 올라 권율, 이순신을 천거하다, 50세 170

제4부 임진왜란 총사령관
34 임진왜란(壬辰倭亂) 발발(勃發)하자 임금의 피란길에 호종하다, 51세 181
35 전시대책 계사와 차자를 올리고 명군이 올 것에 대비하여
군량을 조달하다, 51세 207
36 평안도 도체찰사에 임명되다, 51세 231
37 평양성을 수복(收復)하다, 52세 235
38 도체찰사(都體察使)에 임명되고,
명·일(明·日)간의 화호(和好) 책략에 대응하다, 52세 240
39 서울에 입성하다, 절강 전술 훈련 도입, 52세 260
40 남방 전선(戰線)으로 향하다, 각종 빈민구제, 273
훈련도감 등 방어 대책을 세우다, 52세 273
41 다시 영의정이 되어 전란 극복을 위한 각종의 개혁조치를 취하다, 52세 286
42 둔보: 둔전(屯田)과 보루(堡壘) 설치를 건의하다, 54세 355
43 기축옥사 때 억울한 죄인의 신원을 청하다, 54세 370
44 유조인(柳祖訒)의 상소에 회계하다, 54세 379
45 전란이 소강(小康)인 상황에서의 여러 조치를 취하다, 55세 384
46 이순신(李舜臣) 구원하기, 56세 401
47 정유재란(丁酉再亂) 발발, 56세 405
48 양호(楊鎬)와의 마찰, 56세 410
49 전란은 끝나가는데 선생을 공격하는 자들이 온 나라에 깔리다, 57세 415
50 정응태(丁應泰) 무주(誣奏) 문제를 계기로 탄핵되다, 57세 419

제5부 향리에서의 나날들
51 하외(하회)로 돌아오다, 58세 449
52 왕명으로 직첩을 돌려주었다, 59세 461
53 목사공 상과 대부인 상을 당하다, 60세 469
54 상례증고 편찬, 61세 472
55 대부인의 3년의 복상을 끝내다, 62세 474
56 부원군의 관직을 회복하다, 호성공신록에 기록되다, 63세 475
57 정일품 봉조하 봉록을 받다; 지행합일설을 짓다, 선생 64세 490
58 농환재가 낙성되다; 병세가 심해지다, 65세 498
59 자제들에게 유계를 남기다;
시집 관화록(觀化錄)을 남기고 조화(造化)에 들다, 66세 507
60 별세 후의 관련 기록들 539

제6부 해제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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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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