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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근 원장의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한.일관계의 정치경제학 1

오늘부터 한일문제를 시리즈로 약간만 다뤄보기로 한다. 일본전문가로 자처하면서 이제는 일본에 관한 책을 써서 젊은 시절 국비로 일본에 유학한 빚을 조국에 갚고싶기 때문이다. 

 

오므라이스와 돈가스

도쿄 긴자의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 Rengatei)는 세계적인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의 발상지다. 1895년에 창업한 128년 된 식당. 나도 일본에 가기만 하면 들리는 아니,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집이다. 벌써 4대째 가업을 잇고 있고, 지금까지 성업 중이다. 

일본 전통음식점인 렌가테이의 메인 메뉴인 오무라이스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 즉 손님을 정중하게 접대하는 전통문화가 발휘되는 지점이다. 오므라이스를 좋아하는 윤 대통령이 과거 렌가테이에서 먹은 오므라이스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일본 측에 전하자, 모처럼 일본을 방문하는 윤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하여, 배려 차원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은 옛날 요리법을 오늘날까지 고수하고 있어 오랜 단골이 많이 찾는 곳이다.

먼저 긴자의 스키야키 요리집에서 한일 두 정상이 부부동반으로 1차 만찬을 하고, 경양식집인 '렌가테이'로 자리를 옮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들른 도쿄에 있는 일본 전통음식점, 렌가테이의 모습

오므라이스나 돈가스는 비싼 고급집이 아니라, 긴자에서는 오히려 저렴한 편이다. 점심때는 2000엔대(1인당)에 식사를, 저녁때는 3000~5000엔 정도면 맥주 두어 잔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다만 예약을 받지 않는 집이다. 일본의 인기 있는 맛집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어제 렌가테이(煉瓦亭, Rengatei)는 발표하기를, 이번은 특별히 하루 종일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알림을 붙였다.

이를 두고 어떤 자들은 ‘대통령 취향이 저렴하네, 저딴 거 먹으러 일본까지 가냐?’고 비아냥거린다. 실로 기가 막힌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만약 일본이나 미국 정상이 한국의 정상과 100년 이상 된 삼계탕집이나 된장찌개집으로 초대받아 온다면 어떨까? 그 또한 의미 있는 그림이 될 것이다.

한국의 전통음식

 
그렇다. 전통음식은 그 나라의 전신이 담겨있는 정신문화다. 오므라이스와 돈가스는 그야말로 일본의 정신이 담겨있는 전통요리다. 이렇게 말하면 어리둥절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귀국하면, 아니 외국에서 향수병에 걸려있다면 그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돈가스나 오므라이스와 미소시루(된장찌개)를 먹으면 당장 낫는다. 

그들이 이렇게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자기 음식 문화화한 배경은 아는 사람들만 안다. 나도 거기 유학하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의 장인정신은 사소한 음식 하나에도 온정신을 쏟아 목숨 건다. 일본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의 역사를 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갈 것이다. 150여 년 전부터 그들이 이 두 가지 음식에 쏟아부은 정성과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 그래서 메이지유신은 요리 유신이라고도 한다. 수 천 년 동안 일본인들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고기 요리는 더 하다. 한국인들이 300여 가지 소고기 요리 레시피를 얘기하면 기절한다. 그것도 일반 민간인들이 가정에서 흔히 먹는 요리 종류라니! 

일식 요리의 대표 격인 초밥

 현대 일본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돈가스를 말하자면 일본의 현대요리 전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돈가스가 가지는 역사와 그 의미가 크다. 일본요리의 역사는 150년 남짓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요리의 역사가 유구한 우리나라 역사와 거의 비슷한 수천 년 정도 되는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일천하기만 하다. 한국이나 중국의 요리의 역사가 장대한 만큼 그 질과 양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이르러 일식요리는 일약 뉴욕에서나 동남아에서나 중동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 고급요리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일본식당은 그 도시의 가장 비싸고 고급진 음식점이다. 반면 중국요리나 한국요리를 하는 음식점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부터 그 역사와 배경을 탐색해본다. 그러다 보면 그 의미는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일본의 10만 대군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치열한 세키가하라전투를 벌이게 되며 이에 승리한 도쿠가와는 1603년 일본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에도막부(도쿠가와막부)를 탄생시킨다.

도쿠가와 막부는 말기에 이르러 세상의 큰 변화를 감지하고서 적극적으로 서구에 대외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그중에서 특히 젊은 번주(성주)들이 중심이 되어 경쟁적으로 대외사절단을 서구에 파견하였다. 대외 파견 후 젊은 리더들은 막부에 보고하기를, 중국이나 조선에서 하는 바와 같이 서양을 무조건 배격하는 양이론으로는 안 된다, 하루 빨리 개국해서 서양과 교류하고 배워야한다며 소위 ‘화혼양재(일본의 정신에 서구의 기술)’의 기치를 걸었다. 결국 그들이 중심이 되어 메이지유신(1868년 젊은 무사집단이 중심이 되어 정변을 일으켜,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중심의 군주국을 다시 세웠다)이 일어나고, 명치(메이지)천황이 옹립되었다. 

16세 젊은 군주 메이지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책을 밀어붙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1,200여 년간의 육식금지의 금기를 깬 것이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는 매우 컸다. 그는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2년 처음으로 앞장서서 육고기를 시식하면서, 일본에 육고기의 시대를 열었다.

좌) 서민 육식의 시작, 소고기 전골 '규나베(ぎゅなべ)'와 우)샤브샤브와 비슷한, 규나베에서 발전된 '스키야키(すきやき)'

육식을 취해 체격을 키우고 일본인의 체력에 대한 열등감을 불식하고, 서양요리의 보급을 통해서 서구의 뛰어난 음식문화, 나아가 새로운 문명을 섭취 흡수 동화하려 하였다. 새로운 일본정부는 육식을 통해 급속한 근대화 추진을 이루고, 서구 선진국 대열에 끼기 위해서 서양문명을 도입코자 했다. 육식은 곧 서양문명이었으며, 육식을 통해서만이 서구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요리역사서들은 일본의 육식의 역사를 메이지유신에 버금가는 ‘요리유신’이라고 평가한다. to be con.

 

강철근 원장

 

[ 이력 및 경력사항 ]
(사단법인)이데올로기 리더쉽연구원장
(사)외교부 국제문화교류협회장
(사)무궁화총연합 공동회장
⁕전 대우건설 고문,   
•전 중앙대학교 한류아카데미 원장 
•2004 세계박물관대회(ICOM) 기획단장
•행정자치부 인사국,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 예술국, 관광국, 청소년국 등 재직
-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 외교안보연구원, 지방행정연수원 등 강의

[ 학 력 ]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일본문부성장학생 일본 동경대부설 사이타마 일본국립정책과학대학원정책학 석사
•영국왕립행정연수원(Royal Institute of Public Administration) 수료 
•미국의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공공정책연구소
 
[ 주요 저서 ]
<윤석열의 길>, <나의 징비록>, <사람의 나라>,<사도 바율>,<한류이야기>, <대한광복군정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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