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강철근 원장의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한일관계의 정치경제학2

한국인의 종주국의식 혹은 열등의식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일본에 있는 유형 무형의 유물 유적 혹은 무엇을 보건 거의 모두가 한마디 한다. “저건 우리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야, 혹은 우리 거 흉내 낸 거 아닐까?”라고…. 유형문화인 명승고적이나 건축물에서부터 무형의 음악이나 습관, 마쓰리(축제)의 군무에서, 일본 전 국민이 즐기는 전통스모에서, 그리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말한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배워간 걸 거야…”. 이러한 한국인의 끝없는 일본에 대한 종주국의식. 이는 아마도 한편으로는 문화적 자부심에서 또 한편으로는 근세사에서 나오는 역사적 열등감에서 기인할 것이다. 

언론 기사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측 언론에서 일본에 관한 것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교나 비판 기사가 올라온다. 기사 종류를 불문하고 일본이 어떻게 논평하고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대체 이 부분에서 왜 일본 얘기가 나오는지 어떤 때는 짜증 날 정도다. 일본 언론에서조차 다루지 않는 쓰레기 페이퍼의 네티즌 코멘트를 왜 인용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일본의 어느 작은 절의 주지가 말한 내용도 크게 인용된다. 아마 우리나라 수덕사 주지가 기자들하고 점심 먹으며 “에이, 저 한심하고 너절한 일본애들!”이라고 한 말이 기사화 되면 어떻게 될까? 일본기자가 단 한 줄이라도 보도할까?

반면 일본 언론은 다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한국에 관한 기사를 외면한다. 온통 미국과 중국과 유럽에 관한 기사로 도배한다. 우리처럼 일본의 어떤 절의 주지가 한마디 한 것을 대서특필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일본 정치인이 한마디 한 것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완전 개무시다. 나아가 아시안 게임에서의 금메달 기사는 자국 선수의 것이라도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 한일전에 관한 것도 우리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정규 방송 다 제치고 라이브로 중계하지만, 일본에서 그 게임 보려면 티브이는 고사하고 웬만한 인터넷 도사 아니면 컴퓨터에서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우리 기자들이 일본 네티즌 반응이라고 기사 쓰는 거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대체 그걸 어디서 찾았는지…. 일본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보다 훨씬 순진하지 못하다. 비교하자면 한국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양반이고, 일본인은 서울의 동대문시장 장사꾼과도 같다. 게임이 안 된다. 

일본이 모든 면에서 한창 잘나가던, 그래서 “재팬 넘버 원”을 외치던 시절인 80년대에 남들 다 가는 미국이 아닌 일본 동경대 유학을 감행(?)한 나로서는 여러 가지 소회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던 일본과 가까이 속으로 들어가서 만난 일본은 당연히 너무도 달랐다.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은 풍요 속에서 포식사회를 만끽하고 있었으며,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며,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그들은 막강했다. 그들 말대로 그들은 이미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일본사회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본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일본이 궁금하였다. 막부시대부터 메이지유신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그들의 엄청난 비약이 궁금하였다. 임진왜란을 다시 보고, 일본이 그 당시 조선에서 배워간 선진문물이 그들을 변화시켰듯이, 막부와 메이지유신이 그들을 발전시킨 것은 이해하였지만, 그런 변화를 사회발전으로 연결시킨 일본사회의 역동적 본질이 궁금하였다. 

왜 무엇이 비슷한 변화를 겪은 중국이나 조선과는 달리 그들을 움직여 커다란 발전을 일으켰을까? 나는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책, 신문, TV 등 무엇이든 섭렵하였다. 지역 모임에도 나갔다. 나는 일본이라는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를 찾기 위해 헤매는 전사처럼 깊은 숲속을 헤쳐나갔다. 그때 특히 눈에 띄는 단어는 ‘포식사회’와 오락 엔터테인먼트와 연관되는 말들이었다. 일본의 매스컴은 시도 때도 없이 앞장서서 일본의 오늘을 포식사회의 모습으로 규정하며 일본과 세계의 요리를 내놓고 맛보며 줄기차게 먹어댔다. 그러면서 자국민을 상대로 자극하며 무조건 즐기라고 들쑤셔대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24시간 스포츠와 오락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었고, 음란물을 시도 때도 없이 틀어대고 있었다. 정말 일본은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이었다. 당시 한국의 근엄하기만 한 상황과 너무도 대비되었다. 휴일에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좋았다. 나는 그 무궁무진한 컨텐츠와 자유만세의 무한대의 영역을 구가하는 일본사회의 포용성이 좋았다. 그리고 또 한편 일본의 각 지방과 전 세계 요리를 가져다가 무진장 먹어대는 포식사회를 부러워했다.

일본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구인 안내

그러는 중에 일본의 엄청난 무역역조에 대항하는 미국 등 경쟁국들의 압박으로 일본은 듣도 보도 못한 충격적인 엔고의 쓰나미를 맞았다. 순식간에 엔화는 거의 두 배 이상의 높은 가격이 되어 일본의 무역역조에 맞먹는 경제난국에 처하게 되었다. 일본사회는 1달러당 100엔 이하가 마지노선이라고 아우성쳤고, 실제로 그 마지노선에서 오르내렸다. 일본의 중소기업은 연일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정작 죽어나는 건 일본 내 유학생들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유학생들은 그들이 가진 돈의 반 이하로 가치가 줄어든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은 실제로 굶어 죽거나 (중국과 아프리카 유학생 몇몇이 굶어 죽은 기사가 났었다)거리로 내몰려서 쫓겨나가는 일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였다. 주일 미군의 강도사건이 계속 보도되었고, 하여간 엔고의 파장은 너무 컸다.

일본 커틀릿의 원조라 불리는 돈가스

핍박한 유학생활 속에서 학교 구내식당에서 우리 학생들이 매일 접하는 메뉴 중에서 도시락과 우동, 라면, 그리고 돈가스는 가장 저렴하고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싸고 맛있는지! 한국의 학교 구내식당하고 당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밥 먹을 때마다 우리 유학생들끼리 한국대학 구내식당을 성토하였다. 정말 우리나라 학생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욕설이 저절로 나왔다. 일본은 정말 값싸고 영양가 풍부한 음식을 잘 먹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이런 음식들을 개발한 것일까? 외국에서 직수입한 걸까? 어디서 온 걸까? 이 많은 음식들 중에 정말 일본 것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일본음식 중 대부분은 우리한테서 건너간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하였다. to be con.

 

강철근 원장

 

[ 이력 및 경력사항 ]
(사단법인)이데올로기 리더쉽연구원장
(사)외교부 국제문화교류협회장
(사)무궁화총연합 공동회장
⁕전 대우건설 고문,   
•전 중앙대학교 한류아카데미 원장 
•2004 세계박물관대회(ICOM) 기획단장
•행정자치부 인사국,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 예술국, 관광국, 청소년국 등 재직
-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 외교안보연구원, 지방행정연수원 등 강의

[ 학 력 ]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일본문부성장학생 일본 동경대부설 사이타마 일본국립정책과학대학원정책학 석사
•영국왕립행정연수원(Royal Institute of Public Administration) 수료 
•미국의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공공정책연구소
 
[ 주요 저서 ]
<윤석열의 길>, <나의 징비록>, <사람의 나라>,<사도 바율>,<한류이야기>, <대한광복군정부> 외 다수.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