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필의 나라
- 돈가스와 오무라이스의 나라1
그러는 중에 한국인들(앞으로 이 책에서 한국인들이라 함은 60만 재일동포들과 필자를 포함한 당시 약 2만여 유학생들을 말한다)을 흥분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학교 주변의 식당이나 주점에서 가끔 들리기 시작한 이 노래가 점차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들렸다. 학교 행사에서도 학생들이나 교수들조차 이 노래를 불러댔다. 나중에는 학기 말 회식에서 그 노래를 교수 학생들이 떼창으로도 불렀다. 우리가 한국에서 70년대 말부터 부르던 그 노래가 80년대 중반의 동경에서 마구 불려지고 있었다. 아, 그것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이었다. 그때 나에게 이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애국가나 성가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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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국생활에서 접한 최초의 경이로움이었다. 그건 문자 그대로 자부심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복합심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80년대 중반 당시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부러움 가득한 마음과 조국에서 연일 들리는 우울한 소식에 주눅 들고 있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적이었다.
한국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기사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한번은 학교 연구실 휴게실에서 여러 명이 커피를 함께 마시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한국 뉴스에(야당 정치인들이 길가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질질 끌려가는 장면) 일본학생들이 손가락질하는 모습에 열 받아서 “야, 니덜이 한국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냐?” 하면서 그들과 말다툼하다가 육박전 일보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쪽팔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미묘한 마음 상태에서 조용필의 압도적 등장은 나에게 기적 같은 위안이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재일동포들 모두가 즐거워하였다. 조용필은 과연 슈퍼스타였다. 물론 그뿐이 아니라 김연자도 있었지만 조용필은 압도적이었다. 그는 당시의 일본 매스컴을 도배질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진실로 조용필을 좋아했다. 우리 교수들 몇 사람은 회식 중에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들이 “돌아와요 …”를 부를 텐데 한번 평가해달라고 하였다. 그들 교수들이 노래 부를 때에 일본학생들은 나에게 저게 무슨 조용필이냐고 킥킥 웃어댔다. 나는 졸지에 대중가요 전문가 박진영이 되어 그들의 한국 노래를 평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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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면 참 격세지감이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세계 속에서 연일 기세를 떨치는 우리 아이돌들의 파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특히 극우단체에 의한 반한류 데모가 일본 도처에서 벌어지는 몇 년 전부터 나는 나만이 아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컴퓨터 앞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아니, 나보다도 더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은 재일동포들 특히 평생을 일본 속에서 한스러운 삶을 살아온 동경 우에노 뒷골목에서 작은 김치찌개 집을 꾸려나가는 김씨네 가족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한국인 차별 반대 데모를 벌이는 그들은 최근 전 세계와 일본에서 폭발하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등 한류 아이돌들의 광풍에 반한류 데모를 하는 일본인 데모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을 것이다. 한일관계에 별다른 감정이 없는 우리 아이들이 격렬하게 벌이는 젊은 축제에 나는 기꺼이 동참하며, 이제 새로운 한일관계가 비로소 세워지고 있음을 확신하며, 한일 두 나라는 서로 다시 보고 다시 인식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하며, 그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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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근 원장의 출판 서적 |
그래서 내가 지금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일본과 일본인론이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이야기(“나의 징비록”)와 “한류 이야기”를 쓴 작가로서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한 장로로서 일본을 다시 보고 다시 쓰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일본인들이 만들어가는 일본의 문화와 사회를 중심으로 다시 쓰고자 한다. 사실 이전에는 일본의 역사나 정치에만 관심을 기울여왔었다. 다시 말해 일본의 하드웨어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나는 그런 거창한 것보다는 작고 세밀한 소프트웨어에 훨씬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사실 예전에는 일본의 돈가스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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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우리는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만 하면 그 순간 한국은 일본의 무지막지한 게임, 제이팝공연, 애니메이션 등등 일본 대중문화의 쓰나미에 다 먹힐 것으로 추측했었다. 그러기에 대다수의 학자들과 일반 대중 모두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적극 반대했었다. 우리는 98년 가을 최초로 모든 문화수입을 전면 개방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부터 한류대중문화의 씨앗이 태동하기 시작할 줄이야! 한류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하였다. 역사상 항상 그러하듯이 우리는 위기에 봉착하면 괴력을 발한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한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엄청난 쓰나미를 통해서 다시 일깨워졌고 새롭게 발전하였다.
실로 21세기의 한국과 일본의 대중들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 선배들의 갈등과 존재방식을 달리한다. 그들은 매사에 쿨하며 거리낌이 없다. 전 시대의 감정찌꺼기 같은 것은 아예 없다. 그들은 동시대의 감성을 공유하면서 비로소 같은 것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 주역은 두 나라의 여성과 젊은이들이다. 이미 세계 문화의 주도권이 여성과 청소년에게 넘어갔다고 하지만 그 실체가 21세기 한일 양국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은 구김살이 없다. 좋은 건 좋은 거다. 일본의 젊은이와 여성들이 그러하고 한국의 그들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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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좋아서 남이섬으로 춘천으로 몰려다니고, 일본 동경의 롯뽕기의 맛집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거리낌 없이 찾아 나선다. 한국의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일본 전국 투어 한 번 공연에 5만 명의 여성과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일본의 지방 곳곳에 한국의 여성과 청년들의 배낭여행으로 일본의 외래관광객 1위를 차지한다. 그들은 다르다.
이제 나는 이 책 <돈가스의 사상>을 통하여 새로운 일본론을 말하고자 한다. 아니, 새로운 한일관계를 말하고자 한다. 당초 이 책의 제목은 “일본인, 일본놈들”이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일본사회 새로운 일본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 책의 내용과는 달리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는 말처럼 디테일 있게 소프트웨어를 찾자는 이 책의 의도대로 “돈가스”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다시 생각하였다. to be 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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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근 원장 |
[ 이력 및 경력사항 ]
(사단법인)이데올로기 리더쉽연구원장
(사)외교부 국제문화교류협회장
(사)무궁화총연합 공동회장
⁕전 대우건설 고문,
•전 중앙대학교 한류아카데미 원장
•2004 세계박물관대회(ICOM) 기획단장
•행정자치부 인사국,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 예술국, 관광국, 청소년국 등 재직
-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 외교안보연구원, 지방행정연수원 등 강의
[ 학 력 ]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일본문부성장학생 일본 동경대부설 사이타마 일본국립정책과학대학원정책학 석사
•영국왕립행정연수원(Royal Institute of Public Administration) 수료
•미국의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공공정책연구소
[ 주요 저서 ]
<윤석열의 길>, <나의 징비록>, <사람의 나라>,<사도 바율>,<한류이야기>, <대한광복군정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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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