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필의 나라, 돈가스와 오무라이스의 나라2
대체 돈가스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일식과 양식의 절묘한 결합
원래 가축을 먹는 것은 도래인(옛날 고대 삼국시대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본식 표현, 그 말 속에는 무언가 두렵고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함의가 있다)의 습성으로써 고대 일본에는 없던 습관이었다. 사실 육식금지정책은 천무천왕 이전 천지천왕 등 도래인 세력과 동일시되거나 가까웠던 세력에 저항하고 탄압하기 위한 천무의 새로운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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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유투브 사무라이 로망스 |
막강한 백제출신 도래인 세력을 등에 업은 천지천왕을 천신만고 끝에 물리친 천무천왕은 불교의 도래와 함께 대두되기 시작한 불교의 교리를 국정철학으로 삼고, 그 명분을 내세워 도래인 세력을 억압하고 견제하기 위한 육식금지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찬란한 백제의 문화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은 당시 일본의 후진적인 생활과 문화를 접하면서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정착하였다. 육식도 마찬가지였다. 육식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일본문화에 백제인들은 육식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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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칠 맛과 기름진 맛이 특징인 오미 소고기 |
7세기 초 천지천왕이 새 나라를 건설하고자 백제 도래인들과 함께 새로이 자리 잡았던 오미(近江)지방은 백제나 신라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정착해 살던 곳으로, 그 당시부터 그곳은 좋은 소를 사육하는 기술이 뛰어나서, 지금도 유명한 ‘오미소’나 ‘오쓰 소’의 산지로 유명하다. 지난 2017년 가을, 오사카성을 방문했을 때 성은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으로 절반은 가림막으로 덮였고, 공사 안내문에 ‘나니와(난파難波)의 꿈을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심쿵하여 목이 잠겨오는 것을 느낀 바가 있다.
나니와는 오사카 지방의 옛 지명으로 인근의 오미, 오쓰 등과 함께 백제 도래인들의 슬픔과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오죽하면 그 지명이 나니와(난파難波)였을까? 내 귓가에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조국 백제국을 탈출하여 난파선을 타고 일본에 망명한 백제인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였다. 침몰해가는 조국 백제를 도망치듯 떠나오며 얼마나 많은 유민들이 가슴 속 한을 감추고 있었을까? 저 바닷길은 또 얼마나 시커멓고 무서웠을까?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오사카 항구에 비추는 달빛은 어떠했을까?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 옛날 천여 년 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명 여제와 그 아들들인 천지, 천무 천왕이 만들어간 옛일본의 처절한 역사는 아직도 펄펄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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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에 천여 년 만에 비록 육식이 해금되었다 해도 고기가 서민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백성들은 당연히 육고기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멀리했고, 너무 비쌌고, 어떻게 조리하는지 방법도 몰랐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있어 육식은 엄청난 일이었다. 한국에서 쇠고기 요리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이야기에 그들은 놀라움에 앞서 우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 일본이나 쇠고기 요리의 등장에는 먼저 냄비에 넣고 끓이는 전골이 간단해서 우선적으로 먹게 된다. 고기에 대한 저항감을 완화시키는 데는 먼저 냄새를 없애는 것인데, 고기를 된장과 함께 넣어서 끓이고, 평소 일본인의 식탁에 친근한 파, 곤약, 두부와 같은 서민음식을 함께 끓이는 것으로, 여기에서 일본 특유의 쇠고기전골인 스키야키가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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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특유의 쇠고기전골인 스키야키, 이미지출처=국제신문 |
스키야키야말로 일본 육고기 요리의 효시였다. 스키야키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많은데, 쇠고기를 스키(쟁기)에서 구운 데서 나왔다는 설, 스기(삼나무)나무 판자에 끼워서 구웠던 스키야키의 와전이라는 설, 도쿠가와가 매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쟁기 위에다 새를 구워 먹은 데서 나왔다는 설까지 많은 설이 있다.
서민들이 자유롭게 육식을 먹게 된 것은 육식이 해금된 지 한참이 지난 다이쇼시대(1912-1926)와 쇼와시대(1926-1989)로 넘어가는 시대였다. 이때가 곧 돈가스가 탄생하게 되는 시기였다. 쇠고기전골 즉 스키야키 요리처럼 일본서민들이 다가가기 쉬운 고기라 하여도 처음부터 먹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서양인들처럼 고기와 빵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당연히 일본인들은 주식인 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일양절충의 양식을 찾으며 새로운 양식 아닌 양식을 찾게 된다. 그것이 돈가스였다. 그렇게 일식과 양식이 혼합된 절묘한 돈가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어느 나라나 고기를 먹는 습관은 비슷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먹는 순서로 보면 쇠고기에서 닭고기, 닭고기에서 돼지고기로 자연스레 옮겨간다. 일본요리 역사서들이 말하는 돈가스의 유래를 보면, 돈가스라는 말은 영국의 커트렛(cutlet)과 프랑스의 코트렛트(cotelette)에서 유래되었다.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처음에 비프가쓰레스가 되고, 다음에 치킨가쓰레스, 그리고 포크가쓰레스로 변해갔다. 그 포크가쓰레쓰가 쇼와 초기인 193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역사적인 돈가스로 정착해갔다.
일본요리서에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돈가스를 처음으로 만들어 판 사람은 쇼와4년(1929년) 도쿄 우에노 오카치마치에 있는 폰치켄에서 궁내청 쉐프였던 시마다신지로가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가 돈가스를 창안해내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실험을 거쳤다. 일본인의 취향에 잘 맞는 일식양식을 만들어내고 싶은 그의 의지는 돈가스 특유의 크기와 두께부터 독특한 가열조리법,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모양새, 함께 나오는 야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돈가스를 속까지 잘 익히기 위해서 먼저 돈가스의 두께를 2.5-3센치 두께로 자르고, 나이프와 포크를 쓰지 않아도 되도록 칼로 미리 썰어 놓아 일식처럼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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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방에서 나올 때부터 스테이크가 미리 잘려서 나온다, 이미지출처=국제신문 |
내가 일본에 처음 가서 놀랜 것은 그들은 모든 양식을 일식처럼 먹는 것이었다. 양식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전혀 사용치 않고 오직 젓가락으로만 먹는 것이다. 물론 레스토랑 주방에서 나올 때부터 스테이크를 미리 잘라서 나온다. 그러니 돈가스를 미리 잘라서 젓가락으로 먹는다는 일이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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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근 원장 |
[ 이력 및 경력사항 ]
(사단법인)이데올로기 리더쉽연구원장
(사)외교부 국제문화교류협회장
(사)무궁화총연합 공동회장
⁕전 대우건설 고문,
•전 중앙대학교 한류아카데미 원장
•2004 세계박물관대회(ICOM) 기획단장
•행정자치부 인사국,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 예술국, 관광국, 청소년국 등 재직
-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 외교안보연구원, 지방행정연수원 등 강의
[ 학 력 ]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일본문부성장학생 일본 동경대부설 사이타마 일본국립정책과학대학원정책학 석사
•영국왕립행정연수원(Royal Institute of Public Administration) 수료
•미국의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공공정책연구소
[ 주요 저서 ]
<윤석열의 길>, <나의 징비록>, <사람의 나라>,<사도 바율>,<한류이야기>, <대한광복군정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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