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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마한 설은 일본서기,임나일본부설과 결부되어있다

지금 전라도는 마한에 대한 열기가 가득합니다. 마한 센터를 유치하겠다는 지자체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말하는 마한을 지자체,정치인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어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최명수 전남도 의원은 서울경제 4월 5일자를 보니  “마한과 비슷한 시기에 멸망한 가야사가 삼국시대 역사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라고 하였고 이재태 전남도의원님 4일 제370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 나오셔서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전남 유치 촉구 건의안 발표하셨다고 “전남도는 고고학적 조사연구를 통해 잊혀진 마한의 역사를 발굴하여 마한이 전남지역에서 6세기까지 독자적 문화를 꽃피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라고 하였습니다. 

6세기 마한과 마한사를 얘기하면서 가야와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하고 심지어 유네스코 등재까지도 언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기가 과열되고 있지만 좀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할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6세기 마한이라는 것의 근거는 무엇을 가지고 말하는 것일까요? 

마한이 6세기에 있었다는 문헌이 없다
족보에 증조할어버지가 적혀 있으면 증조부의 묘를 못찾았더라도 증조부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실되거나 못찾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문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어느 문헌에도 없는데 유물,유적을 가지고서 마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고학적으로 밝혔다고 하는데 그 근거를 어느 문헌에 두고 있는지를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마한이 6세기에 있었다는 문헌이 무엇일까요? 죄송하지만 전혀 없습니다. 마한이 6세기에 있었다는 문헌은 전혀 없습니다. 전혀 없는데 고고학이 입증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얘기하는것이냐 하면 이들 고고학은 일본서기의 6세기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6세기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한 마한 :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마한이 없다
 <일본서기>를 가지고 마한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본서기>에 마한 기록이 있겟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일본서기에는 마한은 전혀 없습니다.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마한은 없습니다. 그거 <일본서기>를 맹신하는 역사학자들이 <일본서기>를 뒤에 숨기고서, 뒤에 두고서 마한이 있다고 억지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6세기 마한의 근거라는 일본서기 기록 
일본서기 권 17 계체천황 6년(512년) 에 있는 기록을 보면 백제가 임나 4현을 요청하자 왜왕이 임나 4현을 주었습니다. 그게 연도상 512년입니다. 6세기죠
(512년) 겨울 12월에는 백제가 신을 보내어 조(調)를 바쳤습니다. 따로 표를 올려 상치리(上)·하치리(下哆喇)·사타(娑陀)·모루(牟婁)의 4현을 청했고, 표에 따라 임나 4현을 주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일본서기의 문헌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타베이스의 일본서기 번역글입니다.

임나 4현을 백제에게 줌 ( 512년 12월(음) )

겨울 12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調)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任那國)의 상치리上哆唎·하치리下哆唎·사타娑陀·모루牟婁의 4현을 청했다. 치리국수哆唎國守 穗積臣押山이 “이 4현은 백제와 인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백제와는) 아침 저녁으로 통하기 쉽고 (어느 나라의) 닭과 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금 백제에게 주어 합쳐서 같은 나라로 만들면 굳게 지키는 계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비록 주어서 나라를 합치더라도 후세에는 오히려 위태로울 것인데, 하물며 다른 곳이 된다면 몇년이나 지킬 수 있겠습니까”라 아뢰었다. ......중략..... 이로 말미암아 사신을 바꾸어 칙을 선포하고 내리는 물건과 制旨를 붙여서 표表에 따라 임나의 4현을 주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권 17 계체천황繼體天皇조 ] 

여기서 계체천왕이란 일본열도에 있는 무령왕의 동생을 말합니다. 그러니 위의 내용은 열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임나 4현도 당연히 열도에 있습니다. 인물화상경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칠지도와 인물화상경을 보면 백제가 어떻게 열도에 왜왕,후왕을 두어서 통치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503년 남동생 남제왕(계체왕)이 오시사카궁에 있을때  백제 무령왕 사마께서 보냈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시사카궁이 어디입니까? 지도로 한번 보시죠

일본서기 계체천황조의 기록이니 여기서 왜왕은 계체왕이잖아요 그 왕이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열도 오사카 우측 아래에 보면 궁이 있습니다. 여기서 백제의 신하가 와서 임나 4현달라고 하니 그걸 준겁니다. 그러면 이 부근에서 임나 4현을 찾으면 되죠 왜 한반도 남부에서 찾느냐 하는겁니다. 아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실겁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이 그래도 정직하게 기술되었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일본서기에 있는 임나 4개 현을 마한이라고 하다니..
의원님들이 지금 6세기 마한을 얘기하시는게 마한이 아니고 일본서기에 6세기 임나 4현입니다. 상치리 하치리 모루 사타라고 하는 네곳인데 지명도 일본어 같죠? 그거 다 일본열도에 있어야 할 지명들인데 일제시대 관변학자,식민사학자들이 그 임나 4현을 전라남도에 비정한겁니다. 위치를 한반도 남부에 맞춘겁니다.  이것을 해방후에 우리 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것입니다. 

학계에서는 일본학계가 비정한 곳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일본학계,학자의 주장과 조금 다른 주변이라고 주장할 뿐 한반도 남부를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일본 사학계가 설정해놓은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몇부분 땜질하는 방식의 구태의연한 학문태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왕년에 경성제국대학 교수요 조선학회의 대표격인 다카하시 토오루는 동방학지(연세대) 제 1집을 읽고 한국사학계를 평하되 한국에서 동방학 연구는 자기들이 깔아놓은 레일 위를 달리고 있으며 따라서 일제 시기의 조선연구와 금후의 한국에서 조선 연구사이에 단층은 없다고....   김용섭 교수,『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中 
 

임나 4현은 마한이 아니다.
그러면 한반도 남부에 임나가 들어오는겁니다. 그에 따라 임나일본부도 들어오게 되는것입니다.  이미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던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것입니다. 일본부가 머냐하면 고대의 조선총독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 우익이 주장하는 것이 6세기 마한사로 실현되는 겁니다. 일본부가 아무리 외교기관이니 대사니 영사니 하는 주장을 학계에서 하더라도 일본부가 한반도 땅에 진주해 있었다고 하는 이상에는 일본 우익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 남부의 임나에 바탕을 둔 <일본부 외교기관설>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머라고 하겠습니까?  "멀리 바다를 건너는 외지(한반도 남부)에서 주변 이민족으로 둘러쌓여있으면서 단순한 공동체 수준으로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는, 토지 지배를 둘러싼 권리 관계의 결정 등, 정치적인 힘이나 무력을 배경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순수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 본국의 영향력과는 독립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할말이 없어지는겁니다. 

한마디로 임나가 한반도 남부라고 인정되는 순간에 임나일본부설을 막을 수가 없는겁니다. 그런데 지금 마한사를 얘기하면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의 임나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의 대표적 왜곡 : 6세기 임나 4현

중앙일보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임나일본부설(臨歐日本附說)의 정의는 4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에 이르는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6세기 초 기록에 나온 임나사현을 백제에 할양했다는 내용을 토대로 한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중 하나입니다. (중앙일보 2012.04.21.)

임나4현을 백제에 할양했다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의 역사왜곡중의 하나라는겁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왜 아직도 이런 것에 현혹되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지자체던 정치인이던 도의원이던 정확하게 바르게 알고나서 지지를 표명하던지 거부를 하던지 해야합니다. 무작정 지역에서 학계에서 전문가가 얘기하는거라고 따라서 지지표명을 하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 정말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될 수 있습니다. 
독도는 일본땅의 고대 버전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가 일본땅이었다는 임나일본부설입니다. 이것을 바로 알고 6세기 마한사를 퇴출시켜야 합니다. 일본서기의 임나4현을 퇴출시켜야 합니다.  올바른 전라도사를 후손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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