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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션샤인 황기환 지사, 100년만에 고국의 품에 안기다

대일항쟁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관으로서 미국·유럽에서 활동하다 미국 땅에서 숨을 거둔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가 순국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황기환  지사의 유해는 9일 항공편으로 미국 뉴욕을 출발, 10일 오전 9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으며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되었다.

1886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한 황기환 선생은 인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제 인물로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립협회(共立協會)에서 활동했으며, 1906년 6월까지 레드랜드 지회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소대장으로 유럽 전선에서 중상자 구호를 담당하며 독일 베를린에 입성한 부대를 이끌었다.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김규식 선생의 제안에 따라 김규식의 제안으로 1919년 6월 파리위원부에서 서기장을 맡아 ‘통신전(通信箋)’을 발행하여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선생은 1919년 8월 김규식이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맡게 되어 미국으로 돌아가자 파리위원부의 실질적인 책임자 임무를 수행했다. 프랑스,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제침략과 통치 실상을 널리 알렸다. 

같은 해 1919년 10월엔 러시아 무르만스크에 있던 한인 노동자 200여 명이 일본에 의해 강제 송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펼쳐 35명을 구출해 프랑스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선생은 192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런던위원부 위원에 임명되어 프랑스와 영국으로 오가며 외교 활동을 펼쳤다. 그해 10월 영국 언론인 맥켄지와 협의하여 ‘대영제국 한국친우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영국의 국회의원ㆍ학자ㆍ기자 등 60여 명이 참석한 창립대회에서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연설로 영국인들의 지지와 성원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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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 17명 등 저명한 영국인사 62명을 규합해 대영제국한국친우회를 결성했다. 1920년 12월, 파리위원부 설립 이후부터 추진한 대유럽 외교활동을 소개ㆍ정리한 ‘구주의 우리사업’ 간행에도 참여했다. 

1921년 8월 무렵 이승만의 요청으로 워싱턴회의에 제출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고,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열린 워싱턴회의에 참석하였고, 이어서 하와이에 파견되어 민찬호와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이후 뉴욕과 런던에 오가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23년 4월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떴다.

황기환 지사 묘소는 2008년 뉴욕한인교회의 장철우 목사가 발견하면서 세간에 알려졌고, 이후 보훈처와 주뉴욕총영사관 등의 노력 끝에 순국 100년이 된 올해 국내로 유해 봉환이 이뤄지게 됐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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