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 고대사 "
지난 2017년 9월 28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가야문화 복원을 통한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36회 국학원 정기학술회의에서 ‘임나일본부는 없었다’의 저자인 황순종 박사의 발표 내용을 7차례에 걸쳐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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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순종 박사 |
1. 가야와 임나의 기본 문헌
가야(伽倻)는 가라(加羅) 또는 가락(駕洛)이라고도 하며 신라·백제·고구려와 함께 약 500년 동안 4국시대를 형성했던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의 하나다. 그러나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어 그 역사에 대해 상세한 내용이 전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보면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인용해 가야사를 단편적이나마 밝히고 있다.
이 『가락국기』는 가야에 대한 유일한 역사서로 생각되지만 그 전체적인 내용이 전해오지 않아 가야사의 복원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한편 일본의 고대사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임나(任那)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많은데, 학계에서는 대부분 이 임나가 가야와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임나 즉 가야에 일본이 일본부를 두어 다스렸다는 것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다. 그러나 이 임나는 가야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일본 열도에 있었으며 일본 내의 역사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배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용학자들을 총동원해, 임나가 가야라는 억지 논리를 만들고 거기에 조선총독부와 같은 임나일본부를 두어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다는 식민사학의 대표적인 허구를 조작해 냈다.
그러므로 이런 식민사관은 우리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인데도, 광복 후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식민사관을 청산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우리 학계의 대부분이 임나를 가야의 역사로 인식하며 식민사학을 추종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상세히 밝힐 것이지만, 우선 여기서는 가야와 임나에 관한 기본 자료를 비교함으로써 가야사는 『가락국기』등 우리의 사료만을 토대로 해야 하며, 『일본서기』등 일본의 임나에 관한 자료는 가야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 때 금관(金官)의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문인이 쓴 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전해오지 않는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수로왕이 세운 나라를 금관국(金官國)이라 하며, 6가야 중의 하나로 금관가야가 나온다.
그러므로 고려 때까지도 금관이라는 지명이 있어 그곳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인이 저술한 『가락국기』는 가장 믿을 수 있는 1차 사료임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단편적이나마 ‘가야’로 기록한 것이 상당히 많으므로 이를 같이 활용해야 한다.
반면에 『일본서기』에는 가야·가락은 물론 금관이라는 이름도 일체 보이지 않는데도 거기 나오는 임나를 가야로 보는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또 임나에 속한 나라나 지명이 20여 개나 나오지만 아라가야·성산가야·고령가야 등 6가야의 이름과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으므로, 임나를 가야와 같은 실체로 보는 것은 학문적 고찰의 결과라고 할 수가 없다.
결국 임나는 우리 역사가 아니라 일본 열도에 있던 일본의 역사라고 해야 합리적이다. 다만 임나와 함께 인접한 신라·백제·고구려도 등장하여 임나를 가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네 나라는 김석형의 주장처럼 일본 내의 우리 민족의 분국이거나 최재석의 주장처럼 쓰시마(대마도對馬島)에 있던 부락 단위의 나라들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를 뒷받침하는 가장 쉬운 예는 임나 사람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임나의 초기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소나가시치·쓰누가아라시토·우시키아리시치간키 등 임나 사람의 이름에서 이들이 일본인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만에 하나라도 임나가 가야였다면 가야 사람이 왜 이런 이름을 가졌을까? 더구나 이 기록은 스이닌 2년(서기 전 28년) 조에 보이는데 이는 가야가 건국된 서기 42년보다 70년 전의 일이므로 이들이 가야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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