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 이슈 사회/정치/경제
공군전우회 LA지회, 독립운동가 김종림 순국 52주년 추모

2025년은 미주 이민 122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다. 미주 한인사회는 하와이에 첫 한인들이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미연방 상·하원에서 제정한 공식적인 ‘미주한인의 날’을 매년 기리고 있다.

이에 맞춰 대한민국 공군전우회 LA지회(회장 심인태)는 지난 1월 9일, 로스앤젤레스 잉글우드 메모리얼파크에서 독립운동가 김종림(1886.1.19~1973.1.26) 선생의 순국 52주년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김종림 선생은 미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오늘날 한국 공군의 기원이 된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비행학교’(1920.7.5) 설립에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공군전우회 이계훈 회장은 “이민 선조들의 헌신과 재정지원이 없었다면 비행학교 설립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늦게나마 헌화와 추모를 통해 선조들의 희생에 존경과 감사를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김종림 선생은 1886년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나 1905년 하와이로 이민한 후 1907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이민 초기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캘리포니아에서 벼농사로 한인 최초 백만장자의 명성을 얻었다.

1920년대에는 상하이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을 만나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과 상하이 임시정부 운영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1942년 캘리포니아 예비군에 입대했다. 그의 두 아들은 미 해군에 입대해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과 싸우며 애국의 길을 걸었다.

광복 이후에도 그는 60세의 나이에 새크라멘토 밸리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미주 한인사회의 복리 증진에 힘썼다. 1946년 동지회 북미총회가 창립한 한미주식회사의 벼농사 사업에도 참여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973년 1월 26일, 그는 자신이 설립에 참여한 1세대 이민자들을 위한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잉글우드에 안장되어 있으며,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항공력을 강화해 일본을 공격하려는 비전을 가진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비록 당시 현실적으로 어려운 목표였으나, 김종림 선생의 용기와 헌신은 조국과 동포사회에 희망을 주었고 후손들에게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랄프 안은 생전 인터뷰에서 “김종림 선생은 미주 한인 최초 백만장자이자, 가장 큰 규모의 쌀 농장을 운영했던 분”이라며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과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평생 위엄을 잃지 않은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대한민국 국립항공박물관은 윌로우스 비행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 조형물을 제작했고, 대한민국 공군은 이를 공군의 상징적 기원으로 교육하고 있다.

공군전우회 LA지회 심인태 회장은 “김종림 애국지사의 첫 추모행사를 주관할 수 있어 뜻깊다”며, “앞으로 미주 독립운동사 연구와 업적 평가에서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을 가능케 한 김종림 선생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공군전우회는 김종림 선생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기억하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참고] 북미주 독립운동,비행학교 그리고 애국지사 김종림 (심인태 회장)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662
 

김종림 지사 묘가 안치되어있는 로스앤젤레스 잉글우드 메모리얼파크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