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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과 조롱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검증‘환단고기’를 대하는 박종인 기자의 태도가 남긴 질문
박종인 기자가 밝히는 환국의 영토, 그러나 이런 그림은 환단고기 그 어디에도 없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단순히 한 권의 고서를 둘러싼 진위 공방을 넘어, 한국 사회가 고대사를 어떤 시선으로 인식하고 검증하며 공론화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박종인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땅의 역사’ 243회 영상, 「위대한 ‘환단고기’, 신문을 베꼈네!」는 비판적 검증을 표방하고 있으나, 과연 공론장에서 요구되는 언론인의 태도와 학문적 성찰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 박 기자는 환단고기를 “전적으로 가짜”, “20세기 신문을 베낀 조작물”로 규정하며, 이를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신뢰하는 이들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 “지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단정한다. 역사 자료에 대한 비판과 위서 가능성 제기는 학문적으로 정당한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론 그 자체보다 그에 이르는 방식이다. 영상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조롱 섞인 표현과 인신적 평가, 그리고 ‘믿는 사람은 지성의 자백을 한 것’이라는 식의 발언은 검증의 언어라기보다 배제와 낙인의 언어에 가깝다.

특히 박 기자는 태백일사에 등장하는 ‘가림다 문자’와 ‘옥진총담’ 인용을 핵심 근거로 들어, 환단고기가 1924년 이후 창작된 위서임이 “완전히 증명됐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 기사, 신채호의 글, 명말 소설집 『금고기관』 등을 연결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일정 부분 학문적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 “사기”로 단정하는 태도는 역사 연구가 요구하는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학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논증을 ‘유력한 해석’으로 제시하는 것이지, 다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최종 판결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있다. 박 기자는 영상에서 스스로를 사실과 팩트를 대변하는 ‘정통 사학의 입장’에 가까운 위치에 두고 발언한다. 그러나 해당 사료에 대해 충분하고 체계적인 검증과 학문적 태도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측면도 함께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한계를 성찰의 계기로 삼기보다, 환단고기를 공부하거나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이들 전체를 ‘비이성적 집단’으로 포괄해 해석한다. 이는 언론이 수행해야 할 비판적 중재자의 역할보다는, 특정 관점을 전제로 판단을 내리는, 고약한 심판자의 태도로 읽힐 여지가 크다.

환단고기는 현재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사이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며, 최근에는 대통령의 교육부 산하 기관 업무보고 과정에서 언급되며 다시금 공적 담론의 장으로 호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인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사회적 파급력을 지닌다. 그렇기에 더욱 요구되는 것은 단정이 아닌 질문, 조롱이 아닌 검증, 배제가 아닌 토론이다.

역사는 법정이 아니다. ‘유죄’와 ‘무죄’를 선고하는 공간도 아니며, 한 시점의 연구 성과로 영원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언론인이 역사 문제를 다룰 때 요구되는 기본 자세는, 특정 사료를 비판하더라도 그것이 등장한 사회적 맥락과 문제의식을 존중하고, 반대편의 주장 역시 공론장에서 검증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균형감각이다.

박종인 기자의 이번 영상은 환단고기라는 텍스트 자체보다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가 역사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역사를 논하는 언어가 혐오와 조소의 형식을 띠는 순간, 그 언어는 진실에 다가가기보다 또 다른 신념의 장벽을 세우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는 일제가 남겨놓은 왜곡된 역사 인식의 굴레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와 그 역사적 배경에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지, 그 이유를 우리 스스로도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유럽 크로아티아에 살고 있는 한 대학생이 자신을 ‘진정한 한류 팬’이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한국의 음악과 음식, 다양한 문화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태극기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태극기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세계가 이제 한국의 대중문화를 넘어 그 문화의 근원과 상징, 즉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기와 정신적 토대에까지 관심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는 ‘보이는 한류’를 지나, 그 이면에 흐르는 한국의 정신문화와 사유의 깊이를 이해하려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광복을 맞이한 지 80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완전한 역사적 자립과 인식의 해방을 이루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제 그 미완의 역사 광복을 향한 불씨를 다시 지필 때다. 물론 진정한 역사 광복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치열하되 절제된 검증,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 학문적 협력과 열린 대토론 속에서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결실일 것이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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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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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우 2025-12-28 01:17:30

    삼국사기에는 408년에 왜가 대마도에 군영을 설치하고 신라 침략을 노린다고 나온다.

    환단고기와 삼국사기 어느 기록이 진실인가?
    환단고기가 위서임을 밝히는 수많은 근거 중애서 어떻게든 답변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반박한다.
    답변하지 않는 위서 근거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통고사> <해성>이라는 지명 등등

    왜 이리 선택적인가?
    증거1 증거2 증거3 .............. 증거n 중에서 답변하기 곤란한 건 왜 제외하는가?   삭제

    • 이형우 2025-12-28 01:12:47

      김만섭 기자는
      환단고기는 현재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사이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라고 썼다.
      사실인가?
      아니다. 전혀 논쟁 대상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요? 그 가능성이 무엇인지 말을 해 보시오.
      ‘해당 사료에 대해 충분하고 체계적인 검증과 학문적 태도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보인다고요? 그 측면이 어떤 측면인지 자세히 말을 해 보시오,

      질문, 검증, 토론.
      좋습니다.
      질문하고 검증하고 토론합시다.

      고구려 광개토왕 군대가 일본열도로 침공하였다고 나온다.
      박찬화 기자는 그걸 자랑스러워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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