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송화강’ 표기가 위서의 증거? 문헌학의 기초를 망각한 단견(短見)

오늘 조선일보 박종인 대기자가 유튜브를 통해 《단군세기》 11세 도해단군조의 ‘송화강(松花江)’ 명칭을 근거로 위서론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1363년 당시에는 송화강이라는 명칭이 없었으므로 후대의 조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근대 동북아시아 지명 표기의 특수성과 문헌 전승의 생리를 완전히 무시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오류다. 이에 대해 세 가지 핵심 논리로 반박한다.

올해 5월 초 필자가 다녀온 송화강의 모습 (출처 : 한문화타임즈)

1. ‘송와(宋瓦)’는 ‘송화(松花)’의 음운적 직계 조상이다
박 기자가 간과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명이 ‘글자’로 고정되기 전에 ‘소리’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1363년보다 20년 앞선 1344년 편찬된 《금사(金史)》 지리지에는 이미 ‘송와강(宋瓦江)’이 등장한다. 이는 만주어 ‘숭가리(Sunggari)’의 음차다.

‘송와(Song-wa)’와 ‘송화(Song-hua)’는 당시 음운 체계상 거의 구별되지 않는 이표기(異表記)에 불과하다. 1363년의 이암 선생이 당시 통용되던 ‘숭가리’라는 소리를 기록할 때, 투박한 ‘송와’ 대신 소나무 꽃이라는 뜻을 담아 ‘송화’로 아화(雅化, 표기를 아름답게 다듬음)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즉, 명칭의 실체는 이미 존재했으며, 글자의 선택은 기록자의 문학적 소양에 달린 문제였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표기되기 이전에 송화라는 명칭이 미리 존재하여 혼용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2. 필사본의 숙명: ‘시대적 업데이트’는 위조가 아닌 보존의 증거다

박 기자는 1363년의 원본이 20세기까지 한 글자도 바뀌지 않고 내려와야 한다는 불가능한 전제를 세우고 있다.  《단군세기》와 같은 비전(秘傳) 문헌은 수백 년간 수차례 필사(필사)를 거치며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후대의 필사자가 당대에는 낯선 ‘송와(宋瓦)’를 보고, 익숙한 표준 명칭인 ‘송화’로 고쳐 쓰는 것은 ‘교정(Correction)’의 차원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삼국유사》,《삼국사기》를 읽을 수 있는 고려시대 판본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선 중종때의 중종임신본(소위 정덕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 어투가 아닌 조선 시대의 판본으로 조금씩 교정되었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며  지명의 현대화는 텍스트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를 두고 위조라고 하는 것은, 영문학자가 셰익스피어의 고어(Archaic English)를 현대 철자로 고쳐 쓴 책을 보고 "가짜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궤변이다.

3. ‘1363년 임계점’의 함정: 공민왕대의 시대상
1363년은 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북진 정책을 추진하며 요동과 만주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강화하던 시기다.

당시 고려 지식인들은 만주 지역의 고유 지명을 한역(漢譯)하는 데 있어 독자적인 표기법을 사용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명나라가 공식적으로 정한 ‘송화강’이라는 글자가 나오기 전이라도, 이미 송와강과 송화강이 혼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결론: 껍데기(표기)로 알맹이(역사)를 부정하지 말라
지명 표기의 변천은 역사학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일 뿐, 문헌 전체의 진위 여부를 가르는 ‘스모킹 건’이 될 수 없다. 박종인 기자는 ‘송와’라는 이름으로 엄연히 흐르고 있던 그 강물의 실체는 외면한 채, 오직 ‘송화’라는 글자의 출현 연도에만 집착하고 있다. '송와'가 아니면 안된다고 계속 우기는 것이야 자기 마음이지만 누가 그걸 맞다고 마냥 들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비판자들은 명칭이라는 ‘껍데기’에 매몰되어, 단군조선의 역사를 복원하려 했던 행촌 이암 선생의 장엄한 역사의식이라는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1363년, 숭가리 강물 위에 소나무 꽃이 흐르던 그 시공간의 진실은 ‘송와’와 ‘송화’라는 이름의 교차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하나의 꼬투리라고 잡아서 전체를 위서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정말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기를 바란다. 이미 보고 있는 송화강이 나오는 11세 도해단군조와 12세 아한단군조에서도 진서의 근거들이 수두룩 하게 나오고 있다. 도해 단군시의 웅상 설치 부분은 웅상 풍습이 있었다는  산해경과 일치한다. 

이어지는 13세 흘달단군의 시대로 가면, 그 유명한 오성취루(五星聚婁) 현상이 등장한다. 이 천문 현상은 이미 세계적 천문학자로 평가받는 박창범 교수와, 제3·4대 한국천문연구원장을 역임한 박석재 박사가 조작할 수 없는 무진 50년 오성취루 현상으로 공식 인정한 바 있다.

또한 흘달단군 재위 시기에 이루어진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교체 기록은 중국 측 문헌과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사례는 『단군세기』의 기록이 중국의 하·은·주 관련 문헌과 지속적으로 교차 검증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중대한 역사적·문명사적 장면들은 모두 외면한 채, 오직 ‘송화강’이라는 용어 하나에 집착하여 마치 송와강이 아니라 송화강이면 무슨 큰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호들갑스러운 영상을 찍어 올린 모습을 보면,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다시 한 번 기자의 본분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단 하나의 용례, 하나의 용어를 붙잡고 전체 문헌을 위서로 매도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비상식적이며, 정상적인 학문 세계나 언론계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방식의 판단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논리의 힘 때문이 아니라, 그저 “위서다”라고 단정하는 자극적인 기법 때문일 뿐이다.

내용이 있어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단정과 호통으로 시선을 끄는 방식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길 바란다.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말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이다. 기자라면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개
전체보기
  • 이형우 2025-12-29 16:18:07

    박찬화 기자, 변명할 걸 변명하라.
    지명의 현대화? 무슨 이런 궤변이 있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는 말로 호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해경>을 보고 <단군세기>에 써넣었다고 판단하는 게 정상이다.   삭제

    • 겨울꽃 2025-12-29 10:59:17

      박종인 기자의 실수...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자기 확신과 확증의 편견에 빠져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단순하게 재단해
      그 사소한 부분 물고 늘어지다가 문제는 정작 그 사소함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탈이 나게 생겼다.
      근데 박종인 기자의 접근법은 기존의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의 방법론에서 조금 더
      진화(?)한 버전의 도돌이표.   삭제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