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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질을 회피하는 ‘지엽적 위서론’, 무엇이 두려운가? <AI그림> |
글 : 이매림
최근 주류 사학계와 일부 언론이 쏟아내는 《환단고기》 위서론 공격을 보고 있노라면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논쟁이 단군조선의 실재성, 평양 낙랑군설, 공험진의 위치 등 굵직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벌어진 진검승부였다면, 지금의 공격은 오로지 특정 지명이나 용어의 시차 같은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학계와 언론, 일명 ‘역사 카르텔’은 왜 본질적인 영토와 강역의 문제는 건드리지 못한 채 껍데기만 물고 늘어지는가? 그 침묵의 이면에는 최근 밝혀지고 있는 충격적인 역사 왜곡의 실체가 자리 잡고 있다.
무너지는 ‘반도 사관’의 성벽, 국경선 조작의 실체
최근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등을 통해 밝혀진 연구 결과는 우리가 배워온 국사 교과서의 지리 체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류 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세우며 필사적으로 방어하려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평양 낙랑군설의 붕괴
일본제국주의가 못 박았던 '평양 낙랑군설'은 이미 북한 학계의 고고학적 발굴과 최신 연구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 평양에서 발견된 낙랑 무덤들은 고대 중국의 양식이 아닌 고조선 문화의 연속성 상에 있음이 증명되었으며, 실제 한사군의 낙랑은 북경 주변에서 그 유적과 근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고려 서북계 ‘압록’의 진실
우리가 현재의 압록강(Yalu River)으로 알고 있는 고려의 서북계 국경선은 조작된 것이다. 고려 시대 사료가 가리키는 '압록(鴨綠)'은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라, 요동 반도 깊숙이 위치한 요하인 요동 압록(鴨淥)임이 지리적 고증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는 고려의 강역이 한반도를 넘어 요동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에 관련해 진실을 밝히는 여러 논문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통일신라 국경이 길림까지?
신라의 북쪽 경계 또한 현재의 대동강~원산만 라인이 아니었다. 문헌 고증과 유적 분석에 따르면, 통일신라의 강역은 만주 길림(吉林) 지역까지 뻗어 있었다. 이는 '통일신라가 외세를 빌려 반도 내 소국으로 전락했다'는 식민사학의 프레임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드는 사실이다.
철령위와 공험진의 비정
고려의 후기 북계인 공험진이 함경도가 아닌 두만강 너머 700리 지점(선춘령)에 있었다는 기록과 명나라 철령위가 요동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들 또한 주류 사학계가 외면해온 진실이다.
이것은 학문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쟁(政爭)이다
사학계와 언론 카르텔이 압록강 위치나 신라의 만주 진출 문제를 『환단고기』와 연결하여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신봉해온 ‘반도 식민사학’의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 조선총독부 학자들의 논리를 계승해온 그들의 학문적 권위와 기득권도 함께 붕괴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환단고기』 위서론 주장은 무의미한 정쟁(政爭)이지 학문의 영역 논쟁이 아님을 보여준다. 위서론의 주장하는 언론인, 정치인들은 『환단고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진영의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 하니까? 무조건 밉고 싫은 거다. 그리고 무조건 위서인 것이다. 기존의 강단사학계는 이러한 정치인들과 언론의 카르텔을 이용하여 일명 재야사학을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인 셈이다. 『환단고기』를 전혀 읽어보지 않고 온라인 ‘위키백과’사전 검색해서 얻은 허위정보로 신문이나 유튜브에서 언론인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이러한 사실을 대변해 준다.
사학계는 오직 정해진 답(위서론)을 위해 증거를 짜 맞추는 확증편향으로 국민들의 두 눈을 가리는 것이 동북공정에 무대응 혹은 가세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
국민들은 이제 알아야 한다. 주류 사학계가 왜 그토록 『환단고기』를 ‘가짜’로 몰아세워야만 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환단고기』가 담고 있는 우주와 인간 만물을 통관한 진리와 그러한 정신으로 건국된 고대 강역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일제가 조작하고 주류 사학계가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반도 사관, 식민사관’이라는 허상이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서론 주장은 학문적 양심을 저버린 기득권의 마지막 저항일 뿐이다. 우리는 지엽적인 껍데기 논쟁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 역사의 본래 강역과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본질적인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의 진실은 단어 하나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홍익의 정신으로 대륙을 누볐던 우리 선조들의 거대한 발자국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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