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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회에서 특정한 단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단어가 담지하고 있던 공동체의 기억과 정신이 소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기 2025년의 끝자락에 선 오늘, 우리는 우리 곁에서 소리 없이 증발해 버린 두 가지 상징, 즉 4358년의 시간을 웅변하는 ‘단기(檀紀)’와 한반도를 넘어선 광활한 영토 의식을 내포한 ‘배달(倍達)’이라는 어휘의 실종에 대해 엄중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대다수 국민은 이를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해하지만, 역사학적 메커니즘을 분석해 보면 이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는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가 지난 80년간 견고하게 구축해 온 ‘식민사관의 내면화’ 프로젝트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자, 그들이 사수해야만 하는 기득권의 논리를 위해 우리 역사의 시공간을 인위적으로 절단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강단 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위서로 규정하고 상고사를 부정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일제 관학자들에게서 전수받은 ‘타율성론’이라는 치명적인 도그마가 깔려 있습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한국사는 스스로 발전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 외부의 선진 문명, 즉 중국의 자극을 받아서야 비로소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전제입니다. 이 불순한 전제를 학문적 정설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의 독자적인 ‘시간’과 자생적인 ‘공간’을 철저히 거세해야만 합니다.
먼저 그들은 우리 역사의 ‘시간’을 반토막 냈습니다. 우리가 1961년까지 공용 연호로 사용했던 단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기점으로, 우리 민족이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대등한 문명을 일구었다는 ‘역사적 실체’를 증명하는 지표였습니다. 그러나 강단 사학계는 실증주의라는 미명 하에 단군을 신화의 영역으로 유배시키고, 한국사의 실질적인 기원을 중국 유민인 위만조선이나 한사군 설치 이후로 끌어내렸습니다. 만약 환단고기가 전하는 환국과 배달국의 9천 년 역사를 인정하게 되면, “한국 문명은 중국의 아류”라는 그들의 학문적 대전제가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단군 이전의 역사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금기이며, 이를 증명하는 단기 연호의 폐기는 그들의 논리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순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 역사의 ‘공간’을 한반도라는 협소한 지리적 감옥에 유폐시켰습니다. ‘배달(倍達)’이라는 어휘에는 밝은 땅, 즉 동북아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북방 기마민족의 웅혼한 기상이 서려 있습니다. 신시(神市) 배달국은 요서와 만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문명권이었습니다. 하지만 강단 사학계는 이 광활한 무대를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제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확립한 ‘낙랑군 평양설’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하며, 고대 한반도 북부가 400년 넘게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환단고기의 기록대로 우리의 고대사가 중원을 호령했던 대제국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들이 평생을 바쳐 써온 ‘반도사관’의 논문들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배달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대륙적 상상력을 거세하고, 우리를 반도에 갇힌 소국의 후예로 규정하여 ‘음식 배달’ 앱의 이름으로나 기억되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강단 사학자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는 불편한 진실은 ‘자주적인 역사의 가능성’입니다. 그들은 학문적 권위를 독점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스승인 식민 사학자들의 논리를 계승하기 위해, 고조선 이전의 찬란했던 문명과 홍익인간의 철학을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이자 국수주의로 매도합니다. 대중이 스스로를 위대한 천손으로 자각하는 것을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국민이 패배주의 역사관에 젖어 있어야만 자신들의 지적 권위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역사 전쟁은 단순히 고서(古書) 한 권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지엽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잘려 나간 우리 역사의 ‘시간’을 복원하고, 축소된 ‘공간’을 회복하려는 정신의 광복 운동입니다. 단기와 배달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린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식민사학이 설계해 놓은 좁은 감옥 안에서, 그들이 주입한 노예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되는 진실은 없습니다. 다만,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눈을 감고 귀를 막는 비겁한 기득권 세력이 있을 뿐입니다. 2025년의 우리는 이제 그들이 쳐놓은 금기의 벽을 넘어, 잊혀진 9천 년의 긍지를 다시금 호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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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