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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자들, '환단고기'는 역사적 사실이라 공인... 언론 보도는 정반대였다"김상일 교수, '고조선 복원 한민족 세계연대' 총회서 2002년 평양 학술대회 비화 공개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조선 역사복원 한민족세계연대’ 총회에서 김상일 교수가 과거 남북 학술교류 당시의 충격적인 비화를 공개했다. 김 교수는 2002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공동 학술대회에서 북한 학계가 『환단고기』의 역사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에 의해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2002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의 기억, "북한은 환단고기를 보물로 여겨"
김상일 교수는 발언의 서두에서 2002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남북 학자 공동 학술대회를 회상했다. 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회의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였다.

그는 "당시 북한 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대해 일부 신화적인 묘사가 있을지언정, 그 내용은 한 점도 역사적 사실에 어긋남이 없는 진서(眞書)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특히 평양의 역사 현장에는 『환단고기』에 기록된 18대  환웅  연대기표가 당당히 게시되어 있어, 북한 학계가 이 기록을 실존 역사의 계보로 수용하고 있음을 직접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의 반전, "하루 만에 뒤바뀐 북한 학자들의 입장?"
하지만 김 교수가 지적한 더 큰 문제는 학술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에 발생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몰려든 기자들은 "북한 학자들이 『환단고기』에 대해 어떻게 말했느냐"고 질문했고, 이후 보도된 내용은 현장의 사실과는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분명히 하루 전 평양에서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공인하는 것을 보고 내려왔는데, 다음 날 언론에는 '북한 학자들도 환단고기를 부정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특정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당시 여론을 주도했던 이들에 의해 의도적인 역사 왜곡과 정보 조작이 일어났음을 시사했다.

"식민사학 타파와 고조선 복원의 길, 진실에서 시작해야"
이날 김 교수의 발언은 소위 ‘식민사학’의 카르텔이 남북 학술 교류의 성과마저 어떻게 왜곡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례로 참석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김 교수는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세력이 단순한 학문적 견해 차이를 넘어, 의도적으로 북한의 입장까지 왜곡하며 우리 상고사를 부정해 왔음을 지적했다.

총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이번 증언을 통해 『환단고기』가 남북 역사학계의 공통 분모가 될 수 있음을 재확인했다"며, "고조선 역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왜곡된 보도와 잘못된 학설을 바로잡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래는 김상일 교수의 발언 전문이다.

"2002년도에 바로 뭐냐면이 환단고기를 가지고 남북 학자들이 평화 인민문화공전에서 공용학술 대회를 가졌어요. 이 사실을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북한학자들은 분명히 뭐냐면 환단고기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게 약간 신화적인 얘기가 있지만 한 점도 역사에 어긋난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평양 역사 방문을 갔을 때 그 앞에 환단고기에 있는 환웅 18대 환웅 연대 기표를 앞에 쭉 적어 놨어요

 근데 문제는 뭐냐?이 행사를 끝나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기자들이 잔뜩 몰려들어서 북한학자들이이 환단고기에서 어떻게 얘기를 하더냐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내가 누구라고 얘기는 안 하겠어요 "북한학자들이 전부 환단고기를 부정했다" (라고 했어요) 아니 하루 전에 하고 내려온 걸 그래서 하루 후에 그게 북한학자들이 부정했다 그러니 어떡합니까"

출처 : 역사주권TV https://www.youtube.com/shorts/V7PnmWl5cbY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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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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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우 2026-01-05 19:19:39

    북측에서 간행한 역사서인 <조선단대사 1 고조선 부여편>을 보면 <규원사화><단기고사> <환단고기> 등을 인용을 하고는 있으나 극히 제한하여 이용할 뿐, 세 책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군 8가, 47대 단군 등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여 사례로 인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역대 단군의 치적이나 가림토 문자 등은 전혀 사료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북측에서는 저 세 책을 정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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