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을 들여다보면, 많은 비판이 문헌 검토 이전에 이미 하나의 전제를 깔고 출발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전제란 단순하다. “1911년 초간본 환단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문제는 이 전제가 사실로 입증된 결론이 아니라,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된 가정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이 가정 위에서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른 문헌들이 한데 묶여 해석되면서, 논쟁은 점점 현실과 멀어진다.
홍익사서弘益四書
이 논쟁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홍익사서’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광무 초년 훗날 환단고기를 편찬한 계연수는 그의 스승 해학 이기를 만난다. 계연수桂延壽는 근대 최초의 「천부경」 주석본인 『천부경요해天符經要解』(1899)를 지었고 스승 이기와 함께 『태백일사』에 수록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뽑아내어 책으로 간행을 하였으며, 「참전계경」과 『태백진훈』을 더해서 ‘홍익사서弘益四書’라 이름하였다.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태백진훈』

환단고기 초간본
1911년에 편찬된 초간본 환단고기는 계연수의 저작이다. 이 점 자체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후 환단고기와 관련해 여러 해설서와 주석서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이 환단고기 본문을 변형하거나 끼워 넣은 결과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환단휘기』에 대한 오해다.
홍익사서 해설,주석서 『환단휘기』 (feat 환단고기 아님)

이 책은 우리 민족의 4대 경전, 즉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태백진훈을 중심으로, 원문을 제시하고 그 의미를 풀이한 해설·주석서다. 다시 말해, 환단고기가 민족의 역사서라면, 환단휘기는 민족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해설한 경전 주석서라 할 수 있다.
『환단휘기』는 단학회에서 1971년에 간행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1편 『천부경연해(天符經衍解)』
2편 『원본삼일신고집해(原本三一神誥集解)』
3편 『참전계경(參佺戒經)』 상·하
4편 『태백진훈(太白眞訓)』 상·중·하
이 구성만 보더라도, 『환단휘기』가 『환단고기』를 재편집하거나 변조한 책이 아니라, 『환단고기』와 관계없이 <홍익사서>를 이해하기 위한 해설 작업임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환단휘기』 속 2편 『삼일신고집해』에 인용된 문헌, 예컨대 <신단실기>나 <만주지> 관련 내용을 문제 삼아 환단고기 전체의 신뢰성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문헌의 성격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주장이다.

삼일신고집해는 삼일신고 ‘원문’이 아니라, 삼일신고를 설명하기 위한 ‘주석서’다. 설명 과정에서 관련 문헌을 인용하는 것은 주석서의 일반적인 방법론일 뿐이며, 이를 곧바로 환단고기 본문에 끼워 넣은 증거로 삼는 것은 논리적 도약에 불과하다.
정리하면 구조는 단순하다.
『환단고기』는 1911년의 독립된 역사서이며, 『환단휘기』는 <홍익사서>를 이해하기 위한 해설·주석 작업이다. 이 서로 다른 층위를 하나로 섞어 놓고 “나중에 만들어졌다”, “짜깁기했다”고 말하는 순간, 논쟁은 학술의 영역을 벗어나 억측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환단고기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 무엇이 원문이고, 무엇이 주석인지는 구분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전제를 먼저 세워놓고 그 전제에 맞게 문헌을 끼워 맞추는 방식은 비판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 놓은 추리일 뿐이다.
환단고기 논쟁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도, 정치적 프레임도 아니다. 문헌의 성격을 구분하고, 연대를 바로 세우는 기초 작업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홍익사서’와 '환단휘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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