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9년 창작설의 허구: 1965년 『단서대강』의 출현
위서론자들은 이유립 선생이 1971년과 1976년 자신의 저서에서 『만주지』를 인용했다가, 1979년 『환단고기』를 낼 때 이를 『표훈천사』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가설은 1965년에 이미 완성된 『단서대강』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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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당 이고선 선생은 1914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65년에 『단서대강』을 마쳤다. 이 책에는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의 핵심 내용이 정교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는 이유립의 1979년 판본보다 무려 14년이나 앞선 것이며, 『환단고기』 초간본(1911)의 내용이 이미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최소한 심당 이고선 선생에게는 공유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1970년대에 일본군 보고서 출처를 숨기고 급조했다는 소설 같은 위서론이 얼마나 허구인지, 두 문헌의 원문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자.
| 구분 |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1911) | 『단서대강(檀書大綱)』 「삼신개벽기」(1965) |
| 태초의 광명 | 古往今來 只一光明矣(예나 지금이나 오직 한 광명뿐이다) | 宇宙 에서는 只是光明一塊而已(우주는 다만 광명 한 덩어리일 뿐이다) |
| 신의 지혜 | 統治全世界之無量智能 不見其形體(세상을 다스리는 무량한 지능이 있으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 有統治宇宙之无量智 无量能 而不現其形體(우주를 통치하는 무량한 지혜와 능력이 있으나 형체는 나타내지 않는다) |
| 삼신의 작용 | 呵氣於包萬有 射熱以滋物種 行神以理世務(기를 불어넣어 만유를 감싸고, 열을 쏘아 물종을 기르며, 신을 행하여 세무를 다스린다) | 呵氣 以包萬有 射熱 以滋萬종 行神 以理萬機(기를 불어넣어 만유를 감싸고, 열을 쏘아 만종을 기르며, 신을 행하여 만기를 다스린다) |
이 대조에서 주목할 점은 '가기(呵氣)-사열(射熱)-행신(行神)'으로 이어지는 삼신의 3대 작용 구조다. 이 고유한 철학 체계는 『만주지』 가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처음 보는 분들을 위해서 좀 더 자세히 한번 더 얘기해보자. 이 내용은 "심당전서에 나타난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환국・배달・조선을 중심으로 (전재우,2025)"를 참고하였다.
심당전서는 호가 심당心堂인 사학가 이고선李固善(1906~1982) 선생이 저술한 단서대강檀書大綱, 홍익대전弘益大典, 환단세감桓檀世監, 천정연감天正年鑑 등 다수의 역사 관련 저작과 글을 모아 1981년 그의 아들이 발간한문집이다. 순 한문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한국 상고사인 환국・배달・조선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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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당전서의 총 목록 (전재우 , 2025) |
이고선은 9세 때인 1914년부터 단서대강의 집필을 시작하였고, 1965년에 완성하였다. 이것은 환단고기가 1970년대 후반에 이유립에 의해 창작된 위작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특히 『단서대강』 은 환단고기의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하여 이고선 자신의 1만 년 국통國統 역사 체계를 구축하는 데 활용된 핵심 자료로 보인다. 예컨대,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서문 내용을 자신의 서문에 인용하거나, 태백유사, 환단고기의 일부를 직접 언급하며 삼신설, 천부경 전수 내력 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단서대강』 의 환국・배달・조선 관련 내용 중 약 2/3가 환단고기와의 연관성을 보인다는 점도 주목된다
아홉 살(1914) 때부터 『단서대강檀書大綱』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첫 성과로 10년 만인 1924년에 천정연감天正年鑑, 환단세감桓檀世監의 집필하였다. (1924년 환단세감에는 7세 환인의 명칭등 이미 환단고기 초간본을 증거하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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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단세감(1924년)에는 7세 환인의 명칭이 모두 나온다. 이는 환단고기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이름이다. 게다가 환단세감은 1세 환인을 안파견 환인이라고 하지 않고 커발환 환인이라고 하였다. 이는 "안파견 또는 커발환"이라고 하는 태백일사의 기록을 보지 않고는 쓰기 어려운 치환이다. |
이 해에 선친으로부터 천부경을 풀어보라는 명을 받고 연구하여 28년 만인 1952년에는 홍익대전弘益大典을 저술하였다. 역사서 편찬을 시작한 지 51년 만인 1965년에는 대작인 『단서대강檀書大綱』 을 완성하였으며, 이듬해 1966년에는 『성휘사운姓彙史韻』을 저술하였다.
그가 아홉 살 때부터 『단서대강』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환단고기』를 접한 시기는 초간본이 출간된 3년 후인 1914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심당전서에는 1965년에 완성한 『단서대강』이 들어있는데 이 단서대강 속에 위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
『태백일사』와 『단서대강』을 비교해보면 된다. 정확하게는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와 『단서대강』 「삼신개벽기」를 비교해보자
太古 天地 鴻蒙하고 陰陽이 混沌 日月 堆雜 星辰 錯綜 水火 相盪 壞海 渾融
宇宙 只是光明一塊而已
三神 一體 上帝 一神 有統治宇宙之无量智 无量能 而不現其形體
坐最上之天 所居 千萬里 所爲千萬
却恒時放大光明 發大玄妙 降大吉祥
呵氣 以包萬有 射熱 以滋萬種 行神 以理萬機. (『단서대강』 「삼신개벽기」)
특히 『단서대강』 「삼신개벽기」에는 삼신의 휘하에 오제五帝가 있고 오제의 산하에 오령五靈이 있어 오령으로 하여금 직책을 나누어 만물을 거느려 다스리게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생겨나고 살아가는 바탕이 된다(三神麾下에 有五帝하시고 五帝傘下에 有五靈하사 使之分職하야 攝理萬彙케 하시니 所以藉生也라)고 하였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재구성되긴 하였으나,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와 많은 부분 내용이 일치하여, 저본이 무엇인지 쉬이 판단할 수 있다.
자 이제 환단고기『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를 보자
桓檀古記 太白逸史 三神五帝本紀
『表訓天詞』云 大始上下四方 曾未見暗黑 古往今來 只一光明矣.
自上界 却有三神卽一上帝 主體則爲一神 非各有神也 作用則三神也.
三神 有引出萬物 統治全世界之無量智能 不見其形體.
而坐於最上上之天 所居 千萬億土
恒時 大放光明 大發神 竗 大降吉祥
呵氣於包萬有 射熱以滋物種 行神以理世務
『표훈천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대시(大始, 태시)에 상하와 동서남북 사방에는 일찍이 암흑이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오직 한 광명뿐이었다.
천상 세계에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곧 한 분 상제님[卽一上帝]이시다. 주체(主體)는 일신(一神)이시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라, 작용(作用)으로 보면 삼신(三神)이시다.
삼신은 조화로 만물을 빚어내고,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지만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신다.
가장 높고 높은 하늘에 앉아계시니, 그곳은 천만억토(무수한 영토)이다.
삼신은 항상 광명을 크게 방출하고, 신묘한 기운을 크게 발하며, 상서로운 기운을 크게 내리신다. 기(氣)를 불어넣어 만유를 감싸고, 열(熱)을 내뿜어 만물의 종자를 자라게 하며, 신명(신들을 부려서)들로 하여금 삼신의 명령을 집행하게 하여 세상일을 다스리신다.
『단서대강』 「삼신개벽기」는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를 보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문장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다만 이고선은 이를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즉,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1965년에 완성된 『단서대강』과의 내용적 유사성을 통해 그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단서대강』은 『환단고기』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 옮긴 것이 아니라, 핵심 사상과 서술 구조는 유지하되, 한자 표현을 조금씩 달리하고 문장을 풀어 쓰는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이는 이미 존재하던 『환단고기』 초간본의 내용을 바탕으로, 심당 이고선이 자신의 학술적 소신에 따라 의도적 변형과 재서술을 가한 결과이지, 기존에 없던 내용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환단휘기』나 『커발한문화사상사』 등에 등장하는 ‘만주지’ 인용은 『환단고기』 본문 성립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환단고기 초간본이 이미 온전한 형태로 존재했기에, 해당 저술들에서의 만주지 인용은 어디까지나 해설과 주석을 위한 참고 자료의 성격에 불과하다.
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지적했듯, 이는 『신단실기』의 인용처를 따라 만주지 관련 자료를 보조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일 뿐, 이를 근거로 『환단고기』 자체를 도용이나 조작의 산물로 단정하는 것은 문헌의 성격과 형성 과정을 혼동한 판단이다.
3. '만주지'는 참고 자료일 뿐, 원천 사료가 아니다
박종인 기자는 이유립이 『만주지』의 번역 오류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주장하지만, 『단서대강』의 존재는 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유립 선생이 1970년대 저술에서 『만주지』를 언급한 것은 우리 고유의 삼신 사상이 외부 기록에 어떻게 파편적으로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비교 연구용 주석'이었을 뿐이다. 본래 『태백일사』에 있던 완결된 문장이 원천 사료(Source)이고, 『만주지』나 『신단실기』의 기록은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파편일 뿐이다.
만약 『환단고기』가 『만주지』를 베낀 것이라면, 1965년의 이고선 선생이 어떻게 그보다 훨씬 풍부하고 정교한 한자 문체로 『단서대강』을 서술할 수 있었겠는가? 『단서대강』은 『환단고기』 초간본이라는 거대한 저본(底本)이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물증이다.
4. 결론: 『단서대강』이 틔운 위서론의 종말
『단서대강』은 『환단고기』가 1979년의 급조된 창작물이 아니라, 1911년 이후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고유 사서임을 웅변한다. 심당 이고선 선생은 421권의 인용 목록에 『환단고기』를 당당히 올렸고,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여 자신의 역사 체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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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론자들은 이제 '만주지'를 통해서 일본군참모본부의 저작이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걸어보려는 수작에서 벗어나야 한다. 1965년의 『단서대강』이 1979년 위작설을 이미 14년 전에 반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환단고기』는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가짜가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선각자가 목숨 걸고 지켜온 우리 역사의 본모습이다. 역사는 소설이 아니라 기록으로 말하는 것이며, 그 기록은 『단서대강』이 1911년 『환단고기』의 손을 잡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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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서대강 삼신개벽기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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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