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임금으로부터 왕통을 전수받은 순임금이 동쪽을 향해서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경』 「순전」 "東巡望秩 肆覲東后(동순망질 사근동후)"가 핵심 구절이다 『상서』 「순전」의 해당 원문은 다음과 같다.
“歲二月 東巡守 至于垈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해 2월에 동쪽으로 순수하여 대종(태산)에 이르러 시 제사를 지내고 산천에 차례로 제사를 지냈다. 이에 동후를 뵙고,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이 문장에서 핵심 쟁점은 '사(肆)', '근(覲)', 그리고 '동후(東后)'의 정확한 의미이다.
'후(后)'의 자의(字意)
현대 중국어에서 '후(后)'는 황후나 왕비를 뜻하는 단어로 축소되었으나, 갑골문과 금문(金文) 등 고문자학적 관점에서 볼 때 '후(后)'의 본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이전, 즉 하(夏)나라와 그 이전 시기에 '후'는 최고의 통치자, 즉 군주(Sovereign)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예를 들어 하우씨(夏禹氏)를 '하후(夏后)'라 칭한 것이 대표적이다. 갑골문에서 '후'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 혹은 신탁을 받는 사제왕(Priest-King)의 형상을 하고 있다.
따라서 '동후(東后)'를 단순히 '동쪽의 제후들(Eastern Lords)'로 번역하는 것은 주나라 이후 확립된 봉건적 위계 질서를 그 이전 시대인 요순(堯舜) 시대에 소급 적용하는 시대착오적 해석이다. 텍스트가 쓰인 당대의 맥락 혹은 그 원형이 보존된 의미로 해석한다면, '동후'는 '동방의 임금', 즉 중원의 군주(순)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위상을 지닌 '동방의 천자'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그들이 단순한 제후였다면 '동방 제후(東方諸侯)'나 '동백(東伯)' 등으로 표기되었을 것이다. '후(后)'라는 극존칭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그 대상이 독립적인 주권자임을 시사한다.
![]() |
'근(覲)'의 자의(字意)
'근(覲)'은 통상적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다(下見上)'는 의미로 강희자전 등에서 풀이된다. 전통적인 해석자들은 이를 근거로 동방의 제후들이 순 임금에게 와서 알현한 것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문장의 주어와 동사 구조를 분석해보면 이러한 해석은 모순에 부딪힌다.
문장의 주체는 순 임금이다. 순 임금이 주어가 되어 "동쪽으로 가서(東巡守)... 대종에 이르러(至于垈宗)... 이에(肆) 동후를 보았다(覲東后)"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외교적 프로토콜에서, 지위가 낮은 자가 높은 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는 순 임금이 직접 먼 길을 이동하여 동방의 영역인 태산(대종)까지 나아갔다. 이는 순 임금이 알현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 |
출처 : zdic.net
여기서 '사(肆)'는 '드디어', '이에', '비로소'라는 의미의 접속사로, 일련의 과정(순수와 제사) 끝에 맞이하는 클라이맥스(Climax)로서의 만남을 암시한다. 즉, 순 임금이 태산까지 나아가는 수고를 감수하고 비로소 만난 존재가 '동후'인 것이다. 만약 동후가 신하된 제후라면 그들을 소집(召集)하면 될 일이지, 천자가 직접 국경까지 이동하여 '뵙는(覲)'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근(覲)'은 여기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정상회담(Summit)의 성격을 띠거나, 오히려 순 임금이 동방의 선진 문명국 군주인 단군에게 예를 갖추어 방문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내부 증거가 된다.
![]() |
결론: 『환단고기』로 완성되는 동방 역사의 진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상서』 「순전」의 기록은 중원의 순 임금이 동방의 천자를 알현하기 위해 직접 태산으로 나아간 '조근(朝覲)'의 역사적 현장임이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순 임금이 그토록 예를 갖추어 만나고자 했던 '동후(東后)', 즉 동방의 대제왕은 과연 누구인가? 중국의 사서가 '동후'라는 모호한 대명사 뒤에 숨겨놓은 이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통해 비로소 그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낸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은 당시 단군조선이 중원 대륙에 강력한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순 임금이 즉위 과정과 치세에 있어 단군조선의 승인과 협력을 필요로 했던 정황은, 그가 왜 태산까지 직접 이동하여 동후를 알현해야 했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
문맥상 순 임금이 동후를 뵙고 거행한 ‘협시월정일(協時月正日,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잡음)과 ‘동율도량형(同律度量衡, 악률과 도량형을 통일함)’이라는 행위 역시, 기존의 통설처럼 순 임금이 동방에 시혜를 베푼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제후국인 순 임금이 상국(上國)이자 천자국(天子國)인 단군조선으로부터 칠회력(七回曆)과 같은 선진 역법(曆法)과 표준 도량형을 ‘전수받아’ 중원 통치의 기틀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상서』가 기록한 '사근동후(肆覲東后)'라는 미완의 퍼즐 조각은 『환단고기』라는 거시적 역사 텍스트와 결합할 때 비로소 완전한 그림으로 완성된다. '동후'는 바로 단군왕검(또는 그를 대리한 태자 부루)였으며, 이 만남은 고대 아시아의 질서가 단군조선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단순한 야사가 아니라, 왜곡되고 축소된 『상서』의 기록을 올바르게 복원하고 잃어버린 동방의 상고사(上古史)를 되찾아주는 유일무이한 ‘역사의 열쇠’인 것이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