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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가 잘린 산맥, 반쪽이 된 고조선… 일제가 남긴 ‘분열의 지오메트리’백두대간을 끊어낸 일제 지질학자의 선(線), 한반도 남부를 고조선 영역에서 지워버린 식민사학의 칼날과 정확히 일치해… 지리·역사의 주권 회복 시급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반도의 산맥을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등으로 배워왔다.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의 지도 속에서, 한반도 남부(한강 이남)는 주황색 영토 색칠에서 늘 비껴가 있는 ‘하얀 공백’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식에는 거대한 역사의 함정이 숨어 있다. 한반도의 허리를 싹둑 잘라놓은 산맥 지도와, 한반도의 남반부를 고조선의 강역에서 도려낸 역사 지도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일제가 한반도를 영구 지배하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한 ‘지리와 역사의 분열 구조’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무의식 속에 지배적 통설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지질학자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백두대간을 난도질한 일제 지질학자의 눈

지난 2005년 국토연구원의 발표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인공위성 자료와 고도 분석 등 첨단 기법을 동원해 한반도 산맥을 재추적한 결과,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웠던 ‘뚝뚝 끊어진 산맥’이 아니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 줄기로 웅장하게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난 100여 년간 끊어지고 갈라진 가짜 산맥 지도를 진짜라 믿으며 살아왔을까? 그 기원은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작성한 지질 구조도에 있다. 그는 땅 위의 실제 지형(산줄기와 물줄기)을 무시한 채, 땅속의 지질학적 암석 분포와 지구조선만을 기준으로 한반도의 산맥을 분류했다. 그 결과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은 추가령구조곡에 의해 단절된 형태로 그려졌으며, 국토를 유기적인 유동체로 보던 전통적 ‘백두대간’의 개념은 철저히 해체되었다.

일제는 이 지질 구조도를 ‘산맥 지도’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조선총독부 교과서에 수록했다. 우리 국토의 척추를 부러뜨려, 한반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국토가 아니라 파편화되고 분열된 공간이라는 인식을 조선인들의 머릿속에 이식하기 위함이었다.

[지리적 단절] 
고토 분지로의 지질 구조 (1903) ──> 백두대간의 유기적 흐름 분쇄 ──> 한반도의 공간적 파편화
                                                                     
[역사적 단절]                                                         
식민사학의 고조선 남북 분리론 (1920) ──> 고조선 강역의 한강 이북 제한 ──> 한반도의 역사적 분단화


산맥의 단절, 고조선의 단절로 이어지다

국토의 맥을 끊어놓은 이 분열의 논리는 곧바로 역사 왜곡으로 이어졌다. 일제 식민사학이 정립한 고조선 강역 지도를 보면, 고조선은 묘하게도 한반도 남부 땅을 포함하지 않는 영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반도의 중남부는 고조선의 역사적 숨결이 닿지 않은 ‘ 무주지(無主地)’ 혹은 전혀 다른 계통의 집단(소위 진국)이 살던 곳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지도가 그려진 근본적인 배경은 1920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국사 교육지침인 《심상소학 일본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설화요령》)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해당 문헌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옛날에 반도의 북부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 (昔、半島の北部を朝鮮といふ)"


일제는 ‘조선’이라는 국가와 역사의 범위를 한반도 북부로 철저히 제한했다. 왜 그랬을까? 그 속셈은 이어지는 그들의 교수지침 구절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본 과에서 조선반도의 연혁은 북부와 남부가 크게 다르다. 북부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통치했으며, 따라서 중국의 속국(屬國) 또는 영토였다는 사실을, 남부는 곧 조선인의 조상인 한족(韓族)의 거주지로서, 이 지방은 일찍부터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분열의 지오메트리가 노린 궁극적 의도

일제가 설계한 지리와 역사의 도식은 소름 돋을 정도로 일관적이다. 북부 한반도는 '중국의 영토이자 속국'으로 규정하여 조선 역사의 타율성을 강조한다.

남부 한반도는 '고조선의 영역 밖'으로 분리한 뒤, 고대부터 일본(왜)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곳(임나일본부설의 토대)으로 왜곡한다.

결국 일제가 산맥을 단절시킨 지지적 도구(고토 분지로의 지도)와, 고조선의 강역을 북부로 밀어 올려 남부를 공백으로 만든 역사적 도구(조선총독부 국사 지침)는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지리적으로도 단절되어 있고, 역사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가졌으므로,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고 나아가 전역을 지배하는 것은 '고대의 연고권'을 회복하는 당연한 조치(일선동조론)라는 논리였다.

유물은 침묵하지 않는다: 한반도 전체가 고조선의 무대였다

그러나 일제의 정교한 가설은 역사적 유물과 고고학적 진실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교과서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를 배제한 고조선 지도를 싣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실제 고조선의 대표적 표지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의 분포도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해준다.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은 평안도와 황해도뿐만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한반도 남부 전역에서 촘촘하게 발견된다. 고고학적 문화권의 분포는 한반도 전체가 고조선이라는 거대한 연맹체적 문화 공동체의 일원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평양 중심적 기록만을 근거로 삼아 남부 영토를 지워버린 것은, 전형적인 식민사학의 축소 지향적 영토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끊어진 척추와 역사를 이어 붙여야 할 때

산맥을 단절시켜 국토의 유기적 생명력을 빼앗고, 고조선을 단절시켜 민족사의 시원을 북부에 가두려 했던 일제의 기획. 광복 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간적으로는 일제의 산맥 분류법을 가르치고, 역사적으로는 한반도 남부를 지워버린 반쪽짜리 고조선 지도를 교과서에 싣고 있다.

지리학에서의 백두대간 복원이 한반도의 생태적·공간적 주권을 되찾는 일이라면, 고조선 강역의 올바른 복원은 우리 정신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처럼, 요동에서 제주도까지 단절 없이 흘러온 우리 역사의 맥박을 온전히 복원해 내는 일. 그것이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식민주의 유령을 우리 국토와 교과서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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