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정설로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말그대로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부식이 허위로 창작한 것이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는 삼국사기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삼국에 관한 기술을 보면 건국자를 인정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고구려는 6대 태조왕, 백제는 8대 고이왕, 신라는 17대 내물왕 때 사실상 건국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국사 교과서 뿐 아니라 실제 박물관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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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박물관의 백제 연대표 : 고이왕 이전에는 백제의 건국만 표시해놓고 있다. |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처음 창안해 낸 인물은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다. 그는 <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古事記及び日本書紀の硏究:1919)>의 부록인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三國史記の新羅本紀について)’에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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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부에는 고대 왜가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가 존재해야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일본서기는 맞고 삼국사기는 조작되었음을 주장한 것이다.
삼국사기 불신론을 불식시킨 무녕왕릉의 발견
.1970년대 공주에서 무녕왕릉이 발견됐다. 무령왕릉이란 것을 알게된 게 거기에 지석이 나왔는데 지석에 왕의 이름은 사마(斯麻)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마'는 삼국사기에 무녕왕의 이름으로 나온다. 이를 통해서 사마가 무녕왕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사망 연대도 562년 5월이라고 지석에 나와 있는데 삼국사기에도 똑같이 562년 5월이라고 달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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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녕왕릉 묘지석 iN 공주박물관 |
이렇게 해서 삼국사기가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무녕왕릉 발굴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6세기의 일이지만 삼국사기가 신뢰성을 회복함으로써 초기기록에 대한 신뢰도 사실 회복되어야 마땅하다. 중간기록은 맞고 초기기록은 다르게 썼다는 것은 역사서의 기술에 있어서도 말이 안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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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아직도 주류사학계는 버리지 않고 있다. 그에 맞게 임나일본부설의 유령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박물관은 아직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맥을 같이 하는 원삼국론 즉 삼국이 AD3세까지는 원시삼국이었다는 용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무녕왕릉 발굴 이후 수많은 초기기록을 신뢰할 수 있는 유물과 유적과 문헌 검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고 기사] 식민사학의 잔재 ‘원삼국’ 용어는 폐기해야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57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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