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는 다섯 분이 1000년의 세월을 거쳐서 쓴 다섯 종의 사서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묶어서 출간된 것이다. 그중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환국본기 ,신시본기,삼한관경본기,소도경전본훈,고구려국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발해'라고 알고 있는 대진국의 역사를 담은 <대진국본기>가 있다.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담은 <태백일사 대진국본기>는 대진국(발해)는 황제를 칭했으며 모든 황제는 연호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신당서>에도 발해의 연호가 나온다. 그래서 대진국본기의 발해 황제 연호가 신당서를 베꼈다고 무조건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그 내용을 파악하고 나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의 연호는 신당서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이는 신당서와 무관하게 연호가 기록되었음을 뜻한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와 신당서 비교
대진국본기는 15대 중 14명의 연호가 있으며 신당서는 13대 중 9명의 연호만이 기록에 남아 있다.
1) 신당서는 1대에 대중상이 아예 없다.
2) 신당서는 대조영의 연호가 없다. 대진국본기에는 천통이라는 연호가 있다.
3) 대진국본기 6대 화흥 vs 신당서 5대 화여 (한자 다름)
4) 신당서 12,13대 건황,원석의 연호가 없음
5) 대진국본기 15대 인선 있음 , 신당서는 없음
이정도로 다르다는 것은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와 <신당서>는 서로 보았을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보고 누군가 조작했다면 이렇게 많은 부분을 다르게 썼을리가 없다.
![]() |
|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와 <신당서>의 기록 비교표 [그래픽=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 |
그러면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나오는 발해 황제의 연호가 얼마나 검증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대중상의 연호 중광
![]() |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이 측천무후로부터 진국공(震國公)에 봉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측천무후가 대조영의 아비를 진국공의 진국으로 봉했는데 이로써 발해국의 전신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武则天封其父为震国公之“震国”对外称“大震国”(大振国)自称震国王,从此开创了渤海国的前身。”
이를 통해서 발해는 원래 대진국이라고 칭하였고 그 진국의 시발점은 대중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득공(柳得恭)의 발해고 (1784년,정조8년)도 서문(序文) 외에 군고(君考)·신고(臣考)·지리고(地理考)·직관고(職官考)·의장고(儀章考)·물산고(物産考)·국어고(國語考)·국서고(國書考)·속국고(屬國考) 등 9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군고(君考)는 진국공(震國公)·고왕(高王)·무왕(武王)·문왕(文王)·폐왕(廢王)·성왕(成王)·강왕(康王)·정왕(定王)·희왕(僖王)·간왕(簡王)·선왕(宣王)·이진(彛震)·건황(虔晃)·현석(玄錫)·인선(諲譔)·흥요왕(興遼王) 및 염부왕(琰府王)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발해고>에서 맨처음 언급되고 있는 진국공(震國公)은 대중상이다.
이처럼 아버지 대중상을 발해의 1대 태조로 모시는 것이 아들 대조영으로 당연지사며 그래야 나라 건국의 대의명분도 서게 되는 것이다. 1대 대중상부터 기록한 환단고기의 발해 연대는 신당서와 달리 상식적으로도 맞는 것이다.
대조영 연호 천통
발해화폐에서 나온 대조영 연호 천통이 밝혀졌죠. 천통이라는 연호는 환단고기,단기고사,규원사화 등에 나오고 기존 사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구당서》와 《신당서》 등에는 대조영의 연호가 나와 있지 않다.
정명호(鄭明鎬) 前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천통십년동제여래입상天統十年銅製如來立像에 대한 고찰考察> 논문을 통해서 이 천통 연호의 불상이 대조영의 연호임을 입증했다.
[관련 자료] 발해 대조영 연호 '천통天統' 담긴 천통십년명불상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03
![]() |
1) 환단고기
이후 걸걸중상이 죽자, 대조영은 천문령 전투에서 걸사비우와 함께 당나라 장수 이해고를 대파한 뒤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을 이끌고 동모산의 동남방 막일홍산(莫日紅山)에 들어가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였다
2) 규원사화
....고왕의 꿈 중에 신인이 금부를 주며 말하기를 `` 천명이 네게 있으니 우리 진역을 다스리라``고 했다. 때문에 나라 이름을 진震이라 하고 건원을 천통이라 하며 항상 하늘을 공경하여 제사지냈다. ...
2) 단기고사
천통(天統)31년 3월3일(AD729년) 반안군왕(盤安郡王) 신(臣) 야발(野勃)은 명을 받들어 삼가 서문(序文)을 쓰나이다. (주: 대조영은 699년부터 718년까지 20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러므로 ‘천통 31년’이라는 기술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정혜공주,정효공주묘 : 아버지 문황제의 연호 '대흥'
발해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묘 두 공주의 묘지명에 나타난 문왕의 연호 <대흥> 역시 환단고기에 ‘대흥大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
발해의 제3대 황제 문왕(737~793)의 둘째 딸 정혜공주(738~777)와 넷째 딸인 정효공주(757~792). 1949년에 정혜공주묘 발굴되었고 1980년에 정효공주묘가 발견되었다.
![]() |
두 공주의 묘지명에서 대흥(大興)이라는 문황제의 연호가 기록되어있었다. 정혜공주의 비문(49년)에 "大興宝歷孝感□□□法大王之二女也(대흥보역효감□□□법대왕지이녀야)"라고 되어있었으나 당시 이 '대흥(大興)'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무도 몰랐고, '대흥(大興)'에 대한 견해가 분분했으나 정효공주의 비문(80년)을 통해서 연호라는 것이 정확해졌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두 공주의 묘의 발굴 소식을 듣고 연호를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묘의 발견은 환단고기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거기다 '황상'이라는 표현은 발해가 황제국이라는 뜻이다. 황제를 황제라고 표현한 것은 태백일사가 유일하다.
12대 함화 연호 그리고 아들의 휘, 건황
그리고 함화 11년 발해 중대성첩(咸和 11年 渤海 中臺省牒) 의 경우에는 12대 황제의 연호 함화(咸和)와 아들의 휘 건황(虔晃) 이 들어있는 문서이다.
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로 841년에 발해 중대성에서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의 필사본이다. 발해와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문서의 원본은 일본에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발해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있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있는 기록과 일치한다. 대진국본기에 나오는 12대 황제와 태자의 휘와 일치한다.
함화 4년명 발해 비상 속 연호 '함화'와 허왕부
함화 4년명 발해 비상(咸和 四年銘 渤海 碑像) 에는 咸和四年閏五月八日, 前許王府 參軍騎都尉趙文休母李氏라는 기록이 있다. 함화 4년 윤오월 팔일, 예전 허왕부의 참군과 기도위를 지냈던 조문휴의 어머니...라고 하여 허왕부許王府라는 관청이 있다. 발해 황제 아래 여러 왕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 왕 들 중 하나가 허왕이다. 발해가 황제국이므로 당연히 황제로 표현해야 한다. 환단고기는 이에 충실하게 시호를 황제로 표기하고 있다. 명확하다.
![]() |
이상으로 대진국(발해) 황제의 연호를 알아보았다. 위의 근거 자료만으로도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의 황제 연호들이 얼마나 신뢰할만한 기록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특히 지방정권의 역사로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발해에 대해서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다보면 어느 새 중국역사에 편입되고 만다. 환단고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회복해야할 것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