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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가 '남가라'가 아닌 결정적 이유

금관국(金官國)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었던 가야의 한 나라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나오는 남가야(南加耶)를 금관국의 다른 국명이라고 강단사학계는 주장하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529년, 안라국(安羅國)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의 목적은 일본[倭] 천황의 조칙을 받들은 오우미노케나노오미[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의 주재 하에 신라에 의해 멸망된 남가라와 탁기탄 등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회의 참가국은 왜(倭), 안라, 백제, 신라 등이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안라회의(安羅會議)’, 또는 ‘고당회의(高堂會議)’,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등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이 임나재건회의는 남가라 등을 재건한다고 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남가라는 어느 정치체일까?

21년(527) 여름 6월 壬辰 초하루 甲午 近江毛野臣이 군사 6만을 이끌고 任那에 가서 신라에게 멸망당한 남가라(南加羅)·㖨己呑을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고자 하였다 (일본서기 권 17 男大迹天皇 繼體天皇)

일본서기에 의하면 남가라(南加羅)는 527년 이전에 멸망당했다. 망했으니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게이타이 21년, 즉 서기 527년이라는 해이다. 그간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남가라를 김해의 금관가야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이 기록은 서기 527년에 이미 남가라 등이 신라에 격파되어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금관가야(金官伽倻)는 42년부터 532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다. 532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를 왜 527년 재건회의를 하나?  그러므로 재건회의의 대상인 남가라는 금관가야가 아닌 것이 된다. 

황순종 선생은 " 만약 <삼국사기>가 틀렸다면 일본인 학자들은 금관가야는 이미 527년에 망했다는 근거를 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삼국사기가 틀릴리는 없다. 그렇다면 역시나 남가라는 다른 정치체가 된다. 아마도 가야는 일찌기 큐슈로 넘어가서 큐슈 남쪽에 정착하였으므로 이를 남가라라고 한다면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추정이 될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에 맞추어진 억지 비정은 이제 퇴출되어야 한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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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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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사학아웃 2021-12-07 09:17:38

    금관가야를 남가라란 요상한 명칭으로 비정하려는 수작을 벌이는 강단사학계의 의도가 무언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이번 기사는 매우 유용하네요.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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