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의 한국적인 요소와 한국인의 기질
우리는 우리를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위대함을 자각할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첫째는 고대사의 역사와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비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서 사실 가장 한국인의 정신과 기질이 잘 일어난다. 가장 흔하게 자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고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한국인의 근원적인 것이 드러난다. 문화유산의 위대함이나 국보나 보물의 정신을 이야기하기 전에 일상생활에 더 많이 한국적인 요소와 한국인의 기질이 담겨있다. 문화유산에서 찾는 것은 하수다. 고수는 늘 일어나는 일에서 한 눈에 보고 있다.
우선 나물문화다. 직접 조리해먹는 문화다. 우리의 나물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을 이야기 하냐고 비웃지 마라. 식탁에서 직접 삼겹살을 구워먹고, 찌개를 끓여먹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 주냐고 하지마라. 가장 흔하게 하는 말과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직관과 통찰력으로 바라보면 모든 행동양식과 제도와 법이 한국인의 정신과 기질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소하다고 하는 것부터 살펴보자.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나물문화를 가진 나라와 사람들이 없다. 나물은 들이나 산에 야생하는 식물을 일상적으로 밥상에 올려 먹는 것을 말한다. 들이나 산 그리고 바다와 강에서 나는 식물을 채취해서 먹는 나라 있으면 나오라고 해 보라.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중국을 살펴보라, 없다. 일본을 살펴보라, 역시 없다. 야생의 식물을 약으로 채취하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밥상에 매일 올려서 먹는 나라는 없다.
나물문화를 가지려면 야생하는 식물의 특성과 맛 그리고 약용성분까지를 알아야 한다. 식물이 봄부터 가을까지 자라는 생태를 알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놀랍게 주변에 있는 식물의 특성을 전부 이해한다. 나이든 사람들을 보면 봄나물 뜯으러 가는 것이 일과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물문화가 발달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럼 지금도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나물을 안 해먹고, 중국과 일본은 기아상태에 있으면서도 나물을 해먹지 못했는가.
나물문화는 고도의 지식과 실험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풀은 먹으면 죽고, 어떤 풀의 맛은 어떤가를 다 알아야 한다. 조리방법까지도 꿰차야 가능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알아 낼 수 없는 세계다. 위험한 실험을 반복적으로 해야 얻어낼 수 있는 세계다.
다음으로 식탁에서 직불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만의 특별함이다. 기어이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특성이 한국인에게는 있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직불은 직접 불을 식탁에 가져와 먹는 것을 말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끓는 물에 야채를 데쳐먹는 샤브샤브 정도다. 한국인의 직불문화는 일반화되어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모든 고기를 식탁에서 직접 구워먹는다.
우선 삼겹살 목살을 비롯해 소고기 양고기를 바로 식탁에서 구워먹는다. 식탁에서 바로 조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위로 고기나 야채를 자연스럽게 사용해서 자르는 것도 한국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빨리빨리’문화와 실험정신이 그대로 녹아든 식탁문화다. 찌개종류는 나열하기가 어려울 만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김치찌개부터 된장찌개를 비롯해 전골종류까지 직불로 끓여 먹는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직접 조리에 참가한다.
우리는 자연스럽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한국인만이 하고 있는 일들이 많은데 놀라운 것은 일반성을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을 이해하는 키워드, 극단極端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한국인을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악기가 있다. 장구다. 타악기는 하나의 음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나 유럽, 남미의 악기를 봐도 타악기는 하나의 음만을 가지고 있다. 소리가 크고 작게 할 수는 있지만 두 음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악기 중에서 장구는 특별하다. 타악기는 타점의 재질을 하나의 가죽이나 하나의 재질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좌우의 가죽이 다르다. 타악기의 타점의 좌우를 다른 가죽으로 사용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에겐 익숙한 악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좌우의 타점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극단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품이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다름의 포용성이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드문 사례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경우 모든 타악기는 왼손으로 왼쪽을, 오른손으로 오른 쪽의 타점을 친다. 하지만 장구는 오른 타점을 왼손으로, 왼쪽을 오른손으로 치기도 한다. 극단의 수용, 다시 말해 극단의 넘다듦이 이만큼 큰 사례는 없다. 한국인은 극단이란 단어 하나로 설명하면 신기하게도 한국인을 설명하는데 너무 쉽게 풀린다.
이어령 선생이 일본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고 했다. ‘축소지향’으로 일본인의 사회문화현상 그리고 기질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키워드는 아직 없다. 나는 감히 말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극단極端’이다. 극단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모든 것이 풀리는 신비한 현상을 경험했다. 극단은 한국인의 기질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쇠’다. 한국인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인 셈이다.
극단은 한쪽으로 치우쳐져 마지막에 이른 상태나 생각을 말한다. 한국인에게 극단은 한 쪽으로 치우쳐진 하나의 심성이 아니라 오묘한 점이 있다. 하나의 극단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은 다름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가진 기질인 ‘빨리빨리’의 서두름과 서두름의 반대편에 있는 ‘은근과 끈기’라는 정서를 같이 가지고 있다. 반대되는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빨리빨리’의 냄비근성과 느긋하게 지속하는 뚝배기 기질을 같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것을 함께 끌어안는 특별한 능력은 아주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며 사회현상으로 일반적이다.
한국인을 설면하면서 한국인의 기본 정서인 ‘한恨’ 하나만을 가지고 설명하면 반쪽만 설명한 것이 된다. 대척점에 있는 ‘흥興’의 정서를 함께 설명해야 완성된다. 한국인은 하나의 정서로 설명이 안 된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다시 설명하면 ‘빨리빨리’가 긍정적인 면으로는 성실, 부지런함 같은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부정적인 면으로는 서두름, 조급함을 말한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은근과 끈기의 정서는 참아냄, 꾸준함, 한결같음을 말한다. 이 둘을 함께 설명해야 한국인은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내려앉는 ‘한’의 정서와 솟아오르는 ‘흥’의 정서는 한국인을 설명하기 위한 상징성인데 마찬 가지로 한과 흥은 하나의 큰 틀에 담아야 한국인을 설명할 수 있는 정서다. 한국인에게 역동성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다름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쉽게 받아들이는 특성에서 역동성이 나오고, 창조능력이 나온다.
한국인을 알아야 한국의 사회문화 현상뿐 아니라 정치, 경제, 예술, 문학을 이해할 수 있다. 나 자신, 즉 한국인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한국을 이해하는 첫 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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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광철 작가, <극단의 한국인 극단의 창조성>의 저자. 시인-작가며 한국학연구소장으로 활동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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